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세상읽기] 그 후로도 오랫동안 / 박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박진 ㅣ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소중한 지면을 통해 세상을 썼다. 부족한 글이지만, 꼬박꼬박 인권현장을 알릴 수 있었다. 아픈 이야기였다. 세상이 수용하기 힘들어하는 불편한 생각도 많았다. 큰 것보다는 작은 것, 관심이 집중된 곳보다는 잊히거나 잘 보이지 않는 곳을 말했다. 당연히 재미없었을 테다. 그래도 신문은 꼬박꼬박 글을 실어주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지면은 현장이기도 했다. 당분간 활동을 쉬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도 이쯤에서 그만하려 마지막 기고문을 쓴다. 세상읽기라는 코너 제목이 무색한 사적인 글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2년 반의 투병 생활 동안 그것이 의지든 노력이든 무엇으로든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지막 두 달 동안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암세포가 사람을 잡아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현대 의학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는 날들이었다. ‘2020년 11월2일 오후 1시10분’ 단풍이 지랄맞게 고운 깊은 가을이었다. 남편의 사망선고를 들으며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원래 살았던 사람의 것임을 깨달았다. 유가족 곁을 지키는 일이 잦았던 나는, 죽음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산 자의 문제라 여겨왔는지 모른다. 산 자의 오만이고 무지였다. 죽음은 원래 살았던 자들이 고유하게 품은 자신들의 문제이지, 산 자들이 치르는 애도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그의 몸이 고운 뼛가루가 되었다. 봉안한 이후로도 나는 그의 영혼이 어디서 머물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죽음은 끝인 것일까? 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으로 밤을 새운다. 그리움은 나의 몫이지만 그의 꿈과 생에 대한 아쉬움은 거기서 끝난 것일까?

세상을 향해 매일 집을 나서는 아내가 없던 집에서 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 집안을 살피던 아빠였다. 대학 시절 치던 악기를 업으로 삼았다. 가장 행복했던 날이 ‘수원농악단’으로 광장에 선 때라 말한 예인이었다. 흩어진 지역 음악의 자산을 찾아 <수원농악>이라는 책을 엮어낸 지역 예술인이기도 했다. 돼지열병과 코로나로 어려워진 예술인들의 삶에 대해 일러준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안 된다고 무조건 공연은 쉬지. 그런데 놀이공원과 백화점은 쉬지 않아.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동안 예술인들은 살기 힘들지. 그런데 예술인들이 살지 못하면 예술이 죽어. 예술이 없으면 세상도 살아 있는 게 아니야.” 예술인의 긍지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

인권활동가로 살면서 수많은 슬픔을 만났다. 그 슬픔들이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아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슬픔을 함께 앓아내는 줄 알았다. 정작 가장 가까운 이를 잃어보니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이제야 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그만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외롭다. 그가 좋아하던 티브이 프로그램, 그의 이름이 적힌 신용카드, 그의 핸드폰에 찍히는 재난 정보 문자, 에스엔에스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새로운 소식이 너무 처연하다. 일상적인 것들은 모두 뼈마디가 시리다. 이렇게 한달이 지나고 일년, 십년이 지나면 기억으로만 남을 그가 서럽다. 나조차 하루씩 희미해질 것을 아니까 두렵다. 이것이 상실의 정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그는 잃었지만 그가 남긴 것들은 잃지 않아야겠다.

그의 마지막은 마치 불꽃과 같았다. 복수에 가득 찬 물을 빼고도 몸에 수분이 제대로 돌지 않아 거대하고 무거워진 다리로도 걷는 연습을 했고 “아빠가 오늘도 걸었다”고 씩씩하게 말해줬다. 숨 거두기 이틀 전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삶이 있는 마지막까지 우렁차게 살아낸 사람이었다. 미안한 게 많다며 우는 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고 고맙다고 말해줘. 아빠는 우리 딸한테 고마운 게 참 많아”라고 일러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딸이 달려와준 뒤에야 마지막 숨을 거둔 알뜰한 사람이었다. 고마움으로 남아준 사람. 삶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 누구나 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는 사람 모두에게 멋있었던 사람. 아빠라는 이름을 좋아했던 사람. 그의 이름을 남긴다. 마지막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우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예정이야. 코로나가 끝나면 함께 떠나기로 했던 산티아고 어느 길에 당신 먼저 긴 여행을 하고 있다 생각할게. 여행이 끝날 때쯤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 ‘글 쓰는 굿쟁이 은솔’ 나의 남편 정은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코로나19 기사 보기▶전세 대란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