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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정보수집' 의혹의 불씨가 결국 법원까지 옮겨붙었다. 사법부가 또 정치논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몇몇 판사들이 올린 게시글이 불쏘시개가 돼 법원 내부가 사분오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또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가 섰다. 법관회의는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관리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찾아내야 한다며 조사를 3차까지 밀어붙이도록 부추긴 곳이다. 결국 이들이 주장한 것과 같은 블랙리스트 문건은 발견되지 않았고, 법관 사회에 혼란과 상처를 남긴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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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 2안 의견조회하더니 상정은 3안…"상당히 의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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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방법원 지은희 판사는 7일 법원내부망에 '다수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안건 상정을 강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지 판사가 말하는 '안건 상정'은 최근 논란인 판사 개인정보 수집 의혹을 가리킨다.
이 의혹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과정에서 제기된 것으로, 검찰이 중요사건을 맡은 판사들의 취미, 학술회 활동경력, 과거 판결, 재판진행 스타일 등 정보를 모아 문서로 정리한 것이 적정했느냐가 쟁점이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 정도 정보수집이 사찰인지 잘 모르겠다, 위법성 여부를 떠나 불쾌하다, 사찰 의혹을 제기하기에 부족하지 않다는 등 판사마다 반응이 달랐고, 일단은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법관회의가 7일 정기회의에서 해당 의혹에 대한 대응방안을 정식 토의하기로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의를 앞두고 이를 정기회의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는 말이 몇몇 대표법관들 사이에 오가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아직 법관회의에서 논의하기는 이르다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회의 당일 현장에서 제주지법 대표법관이 이 사안을 안건으로 발의했고, 다른 대표법관 9명의 동의를 받아 정식 안건으로 상정됐다.
이에 대해 지 판사는 "최근 장창국 부장판사님이 제안한 안건을 상정할지 여부, 그리고 상정한다면 어떤 안이 좋을지에 대해 수원지법을 비롯해 의견조회를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다수 법원에서 법관들이 신중하자는 의견(반대)이 많았음에도 조금 전 의안 수정을 통한 안건 상정이 강행됐다고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지 판사는 "상정된 안은 사전 의견조회조차 이뤄지지 않은 내용"이라며 "대표회의 구성원도 아닌 제가 공개적인 발언의 성격을 갖는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것인지 다소 주저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조금 전 해당 메일을 받고 상당히 의아한 마음에 글을 올리게 됐다"고 했다.
지 판사는 "당초 '답을 정해두고' 일선 법관들의 의사를 '형식적으로만' 물어본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최소한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당초 각급 법원별 의견수렴 결과가 어땠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안이 거론된 배경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보고 및 설명이 먼저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고 설득력있는 절차이고 대표권을 위임한 법관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 판사의 설명대로라면 법관회의는 일선 판사들에게 의견을 조회한 안건이 아닌 다른 안건을 현장에서 멋대로 상정한 것이 된다. 이는 법관회의의 공정성, 정당성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한 여당 인사가 판사들의 집단행동을 '사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라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의혹 당사자들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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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비판글 게시, 결국 깨져버린 신중론…법관회의 토의 결과 주목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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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신중론 속에서 처음 공개입장을 표명한 인물은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였다. 장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검사가 증거로 재판할 생각을 해야지 재판부 성향을 이용해 유죄 판결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은 재판부 머리 위에 있겠다는 말과 같다"면서 형사절차를 통해서라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개인정보 수집은 불쾌하지만 문건 내용을 사찰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에 대해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그러나 이후 몇몇 법관이 법관회의든 법원행정처든 나서서 이번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송경근 청주지법 부장판사, 이봉수 창원지법 부장판사, 김성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이 법원 내부망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송 부장판사는 "사찰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다"며 법관대표회의가 나서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 부장판사는 "재판장이 증거채부에 관해 엄격한지, 특정 유형의 사건에 유·무죄 판결을 어떻게 하는지, 양형은 엄한 편인지 등을 미리 조사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재판장의 종교, 출신, 가족관계, 특정연구회 등 사적인 정보는 공소유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적인 정보를 대검찰청이라는 공공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 보관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법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며 "이에 관해 논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에 해가 되지 않으며 더 큰 공익에 봉사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판사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7일 회의 전까지 대세는 신중론으로 흐르고 있었다. 판사들이 이처럼 신중을 강조했던 것은 법원이 또 다시 정치싸움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송 부장판사의 글에 댓글을 단 한 부장판사는 "판사 문건 문제점에 공감하지만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 총장의 정치적 논쟁에 법원이 휘말릴 우려가 있다"며 "특히 윤 총장이 징계심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일방의 프레임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법관회의가 보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7일 법관회의에서 재판부 정보수집 의혹이 안건으로 채택될지, 채택 후 어떤 쪽으로 결의가 이뤄질지로 이목이 모아졌고 법관회의는 안건 채택을 결정했다. 법관회의는 이날 저녁 토의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김종훈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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