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바잉’·‘전세난’으로 혼란스러웠던 주택시장
정부는 ‘투기와 전쟁’한다며 다섯번의 규제대책 내놔
주택 ‘수요의 전국적 확산’ 경향도 뚜렷해져
헤럴드경제는 2020년 부동산 시장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패·전·투·수’를 선정했다. 패전투수는 말 그대로 올해도 집값 안정엔 실패했다는 의미다. “부동산 투기와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 “집값은 원상회복돼야 한다”며 연초 문 대통령이 내린 강력한 지침은 결국 민망한 빈말이 됐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전국 집(아파트·빌라·단독주택 포함)값은 6.89%나 올라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11.60%)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아파트값이 특히 많이 올랐다. 전국 7.8%, 수도권 기준으론 10.8% 급등했다.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률이 두자리수를 기록한 건 역시 2006년 이후 처음이다.
패전투수엔 올해 부동산 시장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녹아 있다. ‘패닉바잉’, ‘전세난’, ‘투기와의 전쟁’, ‘수요의 전국 확산’의 ‘아크로스틱(acrostic)’이다. 맨 앞(acro)의 어구(stichos)로 만든 조어를 아크로스틱이라고 한다.
민간 경제연구소와 부동산 정보업체 등에서 최근 발표한 올해의 부동산 키워드 상위 자리엔 대부분 ‘패닉바잉(공황구매)’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산다)’이 자리하고 있다. 젊은층 사이에 ‘지금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다’며 ‘영끌’을 해 집을 사는 패닉바잉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30대 이하 서울 아파트 매매건수는 2만8000여건으로 지난해보다 2배 늘었다. 30대의 올 1월 아파트 매매비중은 30.39%였으나 10월 38.5%로 증가했다. 같은 시기 40대는 28.9%에서 26.1%로, 50대는 18.4%에서 15.1%로 거래 비중이 줄었다.
‘전세난’은 올 한 해를 지배한 키워드였다. 8~9월 잠시 진정됐던 집값이 다시 뛰기 시작한 건 전국적으로 확산된 전셋값 상승의 영향이 컸다. 올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6.04%, 서울 기준으론 10.06%나 올랐다. 10년 내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시장에선 7월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3법(임대차 거래신고 의무제·계약갱신 청구권 부여·임대료인상률 상한 규제)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임대차3법이 시행되면서 계약 갱신 청구를 한 세입자가 늘어 전세 물건이 줄었고, 그나마 나와있는 전세는 집주인이 향후 4년 간 전셋값을 제대로 올리지 못할 것을 우려해 대폭 올려 계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월간 전국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 흐름을 보면 임대차3법이 통과하기 직전인 1~6월 월 평균 0.18%던 데서, 7~11월엔 0.96%로 상승폭이 다섯배 이상 커졌다.
서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이상섭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투기와 전쟁’을 선포한 정부는 올 들어 모두 다섯 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시장에선 아무리 지금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건 ‘실수요’라고 설명해도, 정부는 집값 대책을 ‘투기와 전쟁’으로 여겼다. 조정대상지역을 추가한 ‘2·20대책’, 1주택자 주택담보대출 기준 강화 등이 담긴 ‘6·17 대책’, 종부세율을 최고 6% 인상한 ‘7·10 대책’,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계획을 담은 ‘8·4 공급대책’, 가장 최근 발표한 ‘11·19 전세대책’까지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가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거래 소강상태를 보인 적은 있지만, 매매나 전세나 모두 금방 다시 상승세로 돌아갔다.
최근 집값 상승세는 ‘수요의 전국적인 이동’이 특징이다. 사실상 수도권 전역이 규제지역인 상황에서 파주시 등 비규제지역을 찾아 주택 수요가 이동하고, 주거유형도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단독주택·오피스텔 등 규제를 덜 한 것으로 다양화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에 늘어난 유동성은 이런 분위기를 부추긴다.
‘패닉바잉’ 움직임이 ‘전세난’으로 더욱 심화하고, 정부가 아무리 ‘투기와 전쟁’을 한다는 명분으로 규제를 강화해도 집을 사겠다는 주택 ‘수요의 전국적인 확산’ 현상을 막지 못하고 있는 ‘패・전・투・수’ 상황이 2020년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jumpcut@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