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도 없다" 주장하지만…미필적 고의 인정에 영향 안줘
법조계 "법원, 비슷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서 미필적고의 인정"
4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는 편지와 물건들이 쌓여 있다. 2021.1.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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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의 학대 가해자인 양모를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검찰이 양모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아동학대치사죄다.
법조인들은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검찰이 입증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하면서, 살인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6개월 짧은 생, 고통 속에 끝낸 정인이
정인양은 지난해 10월13일 온몸에 멍이 든 채로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부검결과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었다.
앞서 서울 양천경찰서는 16개월 된 영아가 입양 가족에게서 학대를 받는 정황의 신고를 3차례 신고를 받았는데도 아이와 부모를 분리하지 않고 보호자의 말을 받아들여 돌려보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신혁재)는 오는 13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양모 장모씨와, 양모 안모씨의 첫 공판기일을 연다.
검찰은 일단 장씨를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지만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말 전문 부검의 3명에게 정인양 사망원인 재감정을 의뢰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이 엄중하다"며 "부검의 의견을 종합해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치사죄와 살인죄는 형량에서 큰 차이가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으로 아동학대치사는 기본 4~7년형이다. 살인죄의 경우 보통 동기 살인의 경우만 해도 기본 10~16년이다.
◇살인죄, 미필적 고의 입증에 달려…"가능성 높다"
법조인들은 장씨의 살인죄 적용에는 미필적 고의 입증이 핵심 쟁점이라고 강조했다.
미필적 고의는 자신의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했음에도 그 결과 발생을 인용한 심리상태를 말한다.
미필적 고의는 개인의 내심(內心)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죽일 마음이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법원은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를 정한다.
예를 들어 가해자가 칼로'피해자의 손부위 등 생명에 위험하지 않은 부위를 겨냥해 찔렀다면 상해의 고의만 인정될 수 있지만, 복부를 찔렀다면 아무리 가해자가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유기, 방임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2021.1.6/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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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의 경우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인들의 분석이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아이의 배를 폭행했다면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고, 만약 병원에 데려가는 등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사망이라는 결과까지 인용했다고 볼 수 있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지난해 9월23일 소아과 의사 A씨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경찰에 한 신고전화 녹취록에 따르면 정인이를 데려온 것도 어린이집 원장인 점이 드러났다.
이 변호사는 "핵심인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는 결국 드러난 사실관계를 봐야 한다"며 "언제 사고가 났는지, 언제 병원에 갔는지는 쉽게 확인이 된다"고 했다. 만약 아이가 다쳤는데도 병원에 가는 등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어 "피해자가 성인이냐, 아이냐에 따라서도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며 "정인이의 경우 양모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고 인정된다면 미필적 고의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회장 윤석희)도 4일 성명을 통해 "정인이의 피해, 현출된 증거자료만 보더라도 살인죄로 의율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밝혔다.
◇비슷한 사건들에서 살인 미필적 고의 인정한 법원
앞서 법원은 비슷한 사건에서 이미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바 있다.
자신의 의붓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해 재판에 넘겨진 이모씨(29)에게 법원은 살인죄를 인정해 중형을 선고했다.
이씨는 A군(당시 5세) 전신을 목검으로 100회 이상 때렸다. 또 A군을 들어 올려 방바닥에 여러 차례 집어던졌고 일어서려는 A군의 다리를 걷어차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팔과 다리를 몸 뒤쪽으로 묶어 방치했다.
발견 당시 A군은 얼굴, 가슴, 어깨, 다리 등을 포함한 전신에 광범위한 멍이 있었고,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뽑혀 있었다. 간, 신장, 장간막, 후복막강 등 복부에도 치명적인 손상이 발견됐다.
이씨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폭행한 사실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훈육을 위한 것이었다"는 등 변명으로 일관했다. 사망 당일 A군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스스로 119에 신고하고 가슴압박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씨의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했다. 1심은 이씨에게 징역 22년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 징역 25년으로 높아졌다.
여행용 가방에 9살 의붓아들을 가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계모 B씨(41)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1심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9세 의붓아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7시간이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40대 계모 2020.6.3/뉴스1 © News1 김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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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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