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했다고 2000년 북 송환길 막아
출소 뒤엔 성실함으로 주변 감복시켜
“마지막까지 송환 꿈 놓지 않으셨죠
사모님과 네 자식 이젠 보셨나요
선생님 못다한 꿈 우리가 이룰게요”
[가신이의 발자취] ‘장기수’ 오기태 선생님 영전에
지난해 12월 8일 고인 추도식에서 김혜순 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통일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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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생전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평생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선생님께서 저희 곁을 떠난 지 한 달이 돼 갑니다. 이제는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어했던 김외숙 사모님과 환갑을 넘겼을 네 명의 자식들을 만나보셨는지요! 못다한 말씀, 회한 다 풀고 좀 편안해지셨는지요?
선생님 말씀처럼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통일사업 차 내려왔을 뿐입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붙잡혀 21년이나 옥살이를 했으면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몇곱절 죄닦음을 했을 시간입니다. 그런데 전주교도소 간수들은 ‘전향하라’며 한겨울에 한 평도 안 되는 방안에 12명을 집어넣어 찬물을 퍼붓고 허벅지에 전선줄로 감아 전기고문을 했습니다. 이 강제전향공작은 불법이며 만행이었습니다. 2000년 9월 장기수들이 송환될 때 전향했다고 길을 막은 것도 불법 부당한 일이었습니다. 폭력과 고문에 의한 전향은 무효라며 곧바로 전향 무효 선언을 하고 2차 송환을 신청한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89년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해 교도소에서 배운 목공기술 하나로 전주 남문 화방에서 일할 때, 주변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들어왔냐” 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했고 상점과 창고 열쇠를 도맡아서 관리했다지요.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쉼터 ‘나눔의 집’에 들어간 뒤로도 영세민들과 노숙자를 위해서 밥 짓는 일을 하고 상담 일을 맡으셨습니다. 어디에 계시던 예의 그 성실함으로 주변 사람들을 감복시키곤 하셨지요. 그렇게 전주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오매불망 가족을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뒷산을 오르며 긴긴 세월을 견뎌오셨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급성폐렴으로 두 달 동안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고 2008년에는 또 대장암을 앓는 등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서 자식이라도 보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중국행을 감행하셨다 여러 번 말씀하셨지요. 토문에서 두만강만 건너면 가족들이 있는 온성군!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해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건널 수 있지만, 전주에 남은 장기수 선생들 다칠까 봐, 송환을 희망하는 선생들 모두 함께 당당하게 가겠노라 다시 귀국길에 오르셨지요.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고 의연하게 가시겠다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오셨다 말씀하셨지요.
생의 마지막 날까지 대통령께 가족 품으로 보내달라 청원을 하시면서 송환의 꿈을 끝내 놓지 못했지요. 평상시처럼 주말 성공회 성당에 다녀온 저녁, 갓 퇴근한 후배 조상이(70) 선생에게 “고생했다”고 말씀하시고는 가래가 끓는다며 잠자리에 일찍 드셨는데, 새벽녘 책상에 앉아 탄원서의 끝을 맺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90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단 하루도 앓아눕지 않고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홀연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고인(오른쪽)이 2006~7년 무렵 북한과 중국 경계 지역을 방문했을 때 찍었다. 김혜순 회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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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석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환영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가운데 체크 무늬 상의를 입은 이가 오기태 선생이다. 김혜순 회장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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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평화동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양심수들을 마중하는 선생님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선생님께서 쓰시던 펜이며 손목시계, 열쇠고리, 사진이 사무실에 왔어요. 사진 속에서는 이렇게 환히 웃고 계시는데 선생님은 우리 곁에 없네요. 선생님, 그립고 많이 보고싶어요.
가지처럼 마른 앙상한 몸으로 기꺼이 고난의 운명을 선택하여 깃발처럼 나부끼며 살다간 오기태 선생님, 이제는 생사의 갈림길도 없고 외세와 분단의 아픔도 없고 고문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선생님의 못다한 꿈, 2차 송환을 희망하는 선생님들 살아생전 자식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저희가 더 노력할게요. 민족의 존엄과 통일을 위해 온 생을 바치신 선생님의 뜻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선생님, 통일된 조국에서 꼬옥 다시 만나요.
김혜순/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회장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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