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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코로나 탓 장기기증 급감... 하루 7명꼴 기증 기다리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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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대면 캠페인 어려워져
기증 등록자 16년만에 7만명 밑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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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이식 받은 후 이식 환자 중 국내 두번째로 출산에 성공한 김지은(32, 왼쪽)씨와 그의 딸 홍라율(1) 양. 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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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32)씨는 지난해 9월 16일 딸 홍라율(1) 양을 낳았다. 원체 아기 울음 소리 듣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긴 하지만, 김씨의 지난해 출산은 유독 더 특별했다.

그는 20대 내내 심부전증을 앓으며 생명을 잃을 위기까지 몰렸다가, 2017년 극적으로 기증자를 만나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전체 심장 이식 환자 중 자녀를 출산한 국내 두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라율 양은 심장 관련 유전도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백일 잔치까지 무사히 치렀다. 김씨에게 라율양은, 그 고마운 심장 기증자가 없었다면 영영 못 만났을지도 모르는 기적같은 인연이다. 장기 기증이 한 생명을 살리고,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것이다.

그러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탓에, 김씨처럼 장기 기증 덕분에 새 삶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긍정적 인식이 퍼진 덕분에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던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수는 지난해 16년 만에 6만명 선으로 추락했다.

장기기증 등록자 지난해 25% 급감


20일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등록한 사람의 수는 6만7,161명에 그쳤다. 2019년 9만350명에 비해 25.7%나 급감한 수준이다. 편견과 두려움 탓에 장기기증 캠페인에서는 대면 홍보가 꼭 필요하지만,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홍보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478명으로 2019년보다 28명 늘어나며 답보 상태를 보였다. 같은 기간 동안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2,000여명이 더 늘었기 때문에, 장기기증자가 1명씩 늘 때마다 이식 대기자가 4명씩 증가한 셈이다. 장기기증을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나는 환자는 하루 7명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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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희망 등록자 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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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홍보 못 열어 온라인 캠페인만


장기기증 부진의 직접적 이유는 코로나19다. 수년간 장기기증 대면 캠페인을 진행해왔던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은 지난해 2월 말부터 대면 캠페인을 전혀 열지 못했다고 말했다. 2019년에는 전국 단위 캠페인을 494회 진행했지만, 지난해에는 70회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올해도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가 지난해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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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예인들의 '#아임도너' 챌린지 참여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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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홍보의 공백은 온라인으로 채웠다. 중고등학교에 교육용 온라인 자료를 배포하고, 장기기증 후 감동적 사연을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장기기증을 독려하는 '#아임도너' 챌린지도 진행했다.

그러나 온라인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김 사무처장은 "온라인은 원래 장기기증의 뜻을 가진 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시지만, 원래 생각이 없거나 망설이던 분들은 오프라인에서 더 잘 설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는 오프라인 희망 등록자가 1만명에 그쳐 그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끊이지 않는 '숭고한 약속'


다만 코로나19로 대면 캠페인을 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장기와 인체조직 기증 의사를 밝히는 '숭고한 약속'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희망을 걸 수 있는 대목이다. 장신대 1학년에 재학중인 강현지(21)씨는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하던 지난해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결심했다고 한다. 학교로 찾아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의 교육 활동을 보고, 장기기증 희망 등록이 줄어드는 현실을 알게 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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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4일 전북 군산시 경암동 철길마을에서 장기기증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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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해 사명감으로 일할 것이라는 목표를 갖고 지난해 간호학과에 입학한 강씨는 당장 학생 신분으로도 아픈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심했다. 그 끝에 강씨가 내린 결단이 장기기증 등록이었다. 강씨는 "나의 장기기증으로 인해 새 생명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희망을 가지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처음엔 장씨 역시 장기기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결단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먼 미래에 내 장기를 남에게 준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막연함과 두려움이 있었다"면서도 "조혈모세포 기증 등 뇌사자가 아니어도 방법이 있다는 것, 건강할 때 장기기증 의사를 밝혀두면 나중에 장기기증이 시급한 상황에 도움이 된다는 것 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의 바람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하는 것이다. 강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무서움을 느끼는 게 당연하지만 내 한 몸으로 여러 사람이 새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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