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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시가 있는 월요일] 양팔을 뻗어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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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나는 방 안에서 양팔을 뻗어 양손에 닿는 책장과 벽을 번갈아 보며
오른손으로 책장에 놓인 책을 들다가 놓고 왼손으로 벽에 묻은 먼지를 문지르다가 그만둔다

나는 마당에서 양팔을 뻗어 양손에 닿는 소나무와 아로니아나무를 번갈아 보며
오른손으로 잎을 따서 냄새를 맡다가 버리고 왼손으로 열매를 따서 씹다가 뱉는다

치사율이 높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하여
양팔을 뻗은 간격을 유지하는 게 좋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양팔을 접어서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을 껴안는 일뿐이다.

- 하종오 作 <양팔 간격> 중


마음껏 껴안을 수 없는 세상이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양팔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무를 끌어안거나 양팔을 뻗어 벽에 묻은 먼지를 문지르는 일 정도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양팔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나 자신을 껴안는 일뿐이다.

코로나에 지배당하고 있는 세상을 상징적으로 그린 시다. 코로나 이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살았던가. 그 따뜻함 속에서 얼마나 큰 삶의 용기를 얻었던가. 외로움을 치유했던가!

그 '안고 안기는 일'이 마냥 그리울 뿐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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