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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왜냐면] 북한의 노동당 제8차 당대회를 보고 / 박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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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한식 ㅣ 미국 조지아대 명예교수

작년에 이어 올해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가 생략되었다. 지난 9일에 있었던 제8차 당 사업총화 보고와 13일 <노동신문>에 게재된 제8차 노동당 대회 결론과 결정서가 올해 신년사를 대신하는 모양새다. 특별한 대미·대남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지만 올해 그리고 향후 5년간 북한의 대내외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한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결정들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김정은 위원장의 노동당 총비서 추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공식 직함이었던 ‘총비서’ 직을 승계하면서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의 김정은 총비서의 권력과 위상이 한층 강화되고 공고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비워두었던 총비서 직함을 공식적으로 승계함으로써 9년간의 정치적 탈상을 끝내고 김정은 총비서의 친정 체제가 완결된 것이다. 집권 초기 노동당 ‘제1비서’와 2016년 ‘노동당 위원장’ 등 기존의 수평적인 직함들과 비교해볼 때, 김정은 총비서를 중심으로 당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확립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노동당을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더 핵심적인 권력기관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주목할 점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우리 식 사회주의”, 즉 주체사상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국가 완성이라는 과업을 재천명함으로써 북한이 자본주의식으로 변화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당대회 결정서는 사회주의 완결을 위해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이라는 세가지 이념을 중심으로 국내외 객관적 도전들을 주관적 노력으로 극복하는 혁명적 전환을 이룩하자고 강조하였다.

북한은 2016년 수립한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하여 “계획되였던 국가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고 시인하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북한이 실패를 자인했다거나 또는 자본주의 요소들을 도입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한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히려 당과 국가의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대내외 불가항력적인 도전들이 겹치면서 목표했던 경제발전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결함의 원인과 문제점들을 주체에서 찾고 직면한 편향과 폐단들을 당의 영도하에 일심단결하여 시정해나간다면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북한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이는 경제제재의 해제를 구걸하지 않고,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통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을 담보하겠다는 북한의 확고한 의지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붕괴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이번 당대회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대목은 “국가 방위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하고 핵전쟁억제력을 보다 강화하면서 (핵잠수함 건조와 같은) 최강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결정이다. 특히 당 사업총화 보고에서 미국을 ‘최대의 주적’으로 명시하면서 “강대강·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북-미 관계 개선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 변화에 따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핵에 대해서는 자신을 ‘책임적인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하면서 핵무기 보유와 경제건설이라는 항구적인 병진 노선을 재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본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가 성사되더라도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를 수용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북한의 핵 협상은 현재의 핵이 아니라 미래의 핵, 즉 현재의 핵무기를 유지한 채 핵 군축과 핵 확산 방지에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조차도 북한이 자본주의 및 서구식 민주주의로 변화하여 독일식 흡수통일이 가능하리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당대회를 보면서 북한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변하지도, 붕괴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남과 북이 서로의 이질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며, 그 이질성을 평화적으로 조화시키는 일련의 과정만이 평화 통일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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