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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왜냐면] 언제까지 “좌편향” 타령인가 / 이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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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병호 ㅣ 남북교육연구소 소장·교육학 박사

지난 18일 대통령 새해 기자회견이 있던 날, 한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다고 하는 신문은 “고교생 70% 보는 교과서 ‘천안함 폭침’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냈다. 아울러 “1310개 고교가 채택한 교과서, 북(北) 소행 명시 않고 ‘침몰·사건’ 서술” “1634곳은 대한민국 건국 대신 ‘정부 수립’ 北은 ‘공화국 수립’ 수업”이라고 썼다. 이어 ‘고교 역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첫해인 2003년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 이어지고 있다’는 취지로 글을 맺고 있다.

기사가 놀랍거나 새삼스럽진 않다. 현행 국사 교과서들이 개발되어 학생들에게 보급되기 약 1년 전인 2019년 12월16일부터 3일간 이 신문은 이미 “교과서 집필부터 심의까지 좌편향 교수, 전교조 출신이 대부분 장악했다”는 등 오늘 기사와 주제가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낸 바 있기 때문이다. 1년 전 교육부는 “검정심사위원은 정해진 절차를 통해 구성되었으며, 교과서 제재와 내용은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 편찬상의 유의점 등을 기준으로 전문성이 있는 집필진이 기술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기사는 교육전문가의 의견이라며 “역사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싣지 않는 것은 말 그대로 왜곡”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사 중 이 내용은 맞다고 할 수 있다. 지적하는 대로 역사 교과서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실어야 한다. 논쟁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로 확인되거나 사회가 대체로 인정하는 것만 제시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의 가해자’ ‘대한민국의 건국일’ 등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인 만큼,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의견으로 진술되어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관련 부분 진술은 매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기사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했는데도 교과서들은 ‘선거가 가능했던 한반도 내에서 유일 합법 정부’ 등으로 썼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기자에게 한국사 서술의 주체가 한국 사람인지 아니면 유엔인지 반문하고 싶다. 또 이 기사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는 ‘미래엔’이 출간한 것이라고 콕 집으며, “여기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서술 자체가 빠졌을 뿐 아니라 북한의 인권 침해도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역시 필자에게 반문한다. 이 출판사가 발행한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 ‘개성공단 철수를 합리화하는 박근혜 정부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내용’과 ‘북한 인권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는 것’을 아냐고.

교육 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과서는 국가교육과정 기준과 이를 토대로 만들진 교과서 집필 및 심의 기준 등 법에 따라, 그리고 여러 교육전문가의 오랜 숙의와 노력을 통하여 개발된다. 또 이렇게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라도 학교 현장 교사들에 의하여 자유롭게 선택된 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다음, 다시 학교장의 최종 재가를 통해 결정되고 사용하게 된다.

관련 법령에 따라 엄격히 개발되고 또 민주적 방법으로 채택된 교과서일지라도 사관이나 교육관에 불만족스럽거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과서가 법에 따라 제대로 개발되었고, 또 그 내용도 국가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를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좋은가, 사회주의가 좋은가 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되었다. 지금은 남북 교류 협력과 더불어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국제 관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합 그리고 공영에 어떻게 하면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고 노력할 때다. 반북한, 반통일 정책이나 자세로는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5년차를 맞이하는 2021년, 그 어느 때보다도 바르고 타당한 역사교육과 평화 및 통일교육이 절실한 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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