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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30만원 코트에 추가 배송비 12만원…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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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국 런던에 사는 엘리 허들스톤은 이달 초 유럽의 한 의류 브랜드 온라인 쇼핑몰에서 200파운드(한화 약 30만원)짜리 코트를 주문했다. 배송은 평상시보다 오래 걸렸다. 한 주가 지나고 며칠이 더 지나서야 코트를 가져온 택배 회사는 그에게 82파운드(약 12만원)를 추가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택배를 많이 시켜봤지만 이렇게 비싼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런던에 사는 릴리 피라키도 이달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리스에 있는 친구가 그에게 한 쌍의 금 귀걸이를 보냈는데, 택배회사는 그에게 30파운드(약 4만5000원)를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인들에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 연착륙을 위해 ‘무관세, 무쿼터(생산량 제한 없음) 원칙’에 합의했지만 올해 1월1일부터 통관 절차가 부활했기 때문이다. 개인 택배부터 기업의 수출·수입품까지 영국과 EU 사이의 물류 이동 절차가 복잡해졌다는 얘기다.

영국 거주자들의 택배에 발생한 추가 비용도 이 때문이다. EU의 판매자들은 이달부터는 영국에 택배를 보낼 때 세관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이때 제품 가격에 따라 관세나 부가가치세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비EU 국가인 영국의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한다. 엘리 허들스톤은 BBC에 “나는 택배를 언제 받을지 조차 알 수 없었다”며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택배를 반송했고, 당분간은 유럽에서 어떤 것도 주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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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위치한 슈퍼마켓 진열대의 모습.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해 통관절차가 복잡해지면서 북아일랜드는 식량공급 위기에 직면했다. 벨파스트|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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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는 주문하지 않으면 그만이라지만, 유럽에 공급망이나 판매처를 두고 있는 영국 회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통관 절차가 길어지면서 어업 등 신선 식품을 다루는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 영국연방 소속인 스코틀랜드의 어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산업 전체가 몇 주 안에 붕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23일(현지시간) CNN비즈니스가 보도했다. 스코틀랜드 식음료 업체 푸드앤드링크의 최고경영자인 제임스 위더스는 이 매체에 “기존에는 서류 한 장으로 신선 식품을 며칠만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보낼 수 있었다”며 “지금은 모든 거래마다 26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위더스는 스코틀랜드 배가 덴마크에서 어획물을 처리하기 위해 48시간 동안 근해를 항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도 했다.

영연방 소속인 웨일즈에서 말 사육 사업을 하는 업체 포레이지플러스도 최근 유럽으로 보낸 물류가 반송되는 일을 겪었다. 새로운 관세정보를 처리하는 해운 회사의 시스템이 결함을 일으키면서 물류가 반송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일하게 EU 단일시장에 남기로 한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인접한 영연방 소속 국가로부터의 물자 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사이먼 코브니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지난 20일 ITV와의 인터뷰에서 북아일랜드 슈퍼마켓의 텅빈 선반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명백한 브렉시트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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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화물 트럭이 지난 1일 북아일랜드의 라르네항에서 통관 절차를 밟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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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영국 경제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지난 22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와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영국 경제가 올해 1분기에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내다봤다. EU와 영국 사이의 물류 이동 시간이 길어지면서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IHS마킷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 제조 업체의 33%는 수출 실적 하락의 원인을 ‘코로나19’로 지목한 반면, 60%는 수출 하락의 원인을 ‘브렉시트’로 꼽았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지난 25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장기 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브렉시트 이후 산업현장이 받을 충격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영국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럽 회사들의 수출·입을 돕는 업체인 트레이드앤보더스의 설립자 안나 제르제프스카는 CNN에 “지난 5년 동안 (브렉시트) 위험을 알았음에도 (영국 정부는)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통관 절차 관련 고객사들의) 기술적인 질문에 대해 영국 정부의 답을 받는데 48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은 신선 식품에는 분명히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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