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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사설] 기재부 제쳐두고 자영업 손실보상 서두르는 이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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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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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해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손실보상을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련 부처와 당정이 검토하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여권 대선주자들 간 진흙탕 싸움을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재정을 다루는 기획재정부를 제쳐 두고 중기부를 주무부처로 꼽은 게 주목된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기재부를 찍어누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기재부는 정세균 총리가 제안한 손실보상제에 대해 재정 문제를 들어 미온적 입장이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법제화한 나라를 찾기 쉽지 않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반기를 들었다. 정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쟁 중 수술비를 아끼는 자린고비”라고 했다. 도를 넘은 인신공격이다. 홍 부총리는 마지못해 손실보상제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도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짚어볼 내용이 많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어제 ‘총리·부총리협의회’에서 정 총리가 홍 부총리에게 “관계부처 간 충분한 협의하에 검토하라”고 했지만, 그간의 갈등이 봉합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 한마디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주에 2월 국회 일정을 확정하고 입법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여당은 임시국회에서 소상공인지원법을 고치고 시행령을 만들어 3월 중 지급할 태세다. 가뜩이나 지금 기재부의 위상과 역할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은 기재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여당 주도의 포퓰리즘에 맥없이 무너졌다. 홍 부총리는 그의 고언이 정치논리에 밀려 흐지부지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홍(洪)두사미’라는 별명까지 듣고 있다.

국가재정은 ‘지속 가능성’이 생명이다. 기재부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둔 이유이기도 하다. 힘으로 윽박질러 기재부의 직무유기를 부추길 거면 부총리급 기재부가 왜 필요한가.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돈풀기라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재난지원금처럼 국가재정이 정쟁 수단으로 전락할까 우려스럽다. 손실보상제는 보상 방식과 지급 대상·범위 등 검토할 내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영업자만 국민이냐”는 형평성 논란까지 불거지는 판이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서두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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