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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아침을 열며] 과잉 규제가 된 범교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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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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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지난 26일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학교의 일상을 회복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코로나19는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을 가져왔지만 코로나 이전에도 문제는 있었다. '범교과 교육'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고 있는 많은 학습 내용들이 학교교육과정의 정상 운영을 가로막았다. 교육과정은 학교의 일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따라서 학교의 일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학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나뉘는데, 여기에 사회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법령들이 별도 교육을 요구하는 것들이 늘고 있다. 범교과 교육이란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등 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학교에서 다루도록 하는 교육 내용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이전의 범교과 교육은 39개 주제로 매우 방대했는데 지금은 10개 영역(① 안전・건강 교육 ② 인성 교육 ③ 진로 교육 ④ 민주 시민 교육 ⑤ 인권 교육 ⑥ 다문화 교육 ⑦ 통일 교육 ⑧ 독도 교육 ⑨ 경제・금융 교육 ⑩ 환경・지속가능 발전 교육)으로 정리하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좋은 취지를 갖는다 하더라도 실제 운영은 다르다는 점이다. 범교과 교육은 물리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하다. 각종 법령과 지침에서 요구하는 시간을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과 비교해 보자. 초등학교는 583/680시간(86%), 중학교는 310/306시간(101%), 고등학교는 310/408시간(76%)에 해당한다. 이는 국어, 영어, 수학보다 많은 시간이다. 학습 내용의 중복은 필연적이고 법령에서 요구하는 시간과 절차를 따르느라 내용보다 형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범교과 교육은 학교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의 나라만 살펴보아도 사회적 요구에 대해 학교가 반응할 것을 요구하더라도 교과 이외의 특정 교육 내용을 일정 시간 이수하도록 의무화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교육 내용을 시수까지 따져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자치를 가로막고 문서에 의존하는 형식화된 교육을 유발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법령상의 기준을 초과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범교과 교육 관련 과잉 지침을 정비해야 한다. 법령에는 포괄적인 내용의 노력을 하도록 했는데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침은 한 발 더 나아가 시수까지 정해 놓은 것이 많다. 생명존중 자살예방 교육, 다문화교육, 통일교육, 독도교육이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하여 학교의 교육과정 자율권을 확보해야 한다. 개별 법령의 입법 취지가 있고, 법령이 너무 많아 개정이 쉽지 않다면 특례법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가령 '학교의 범교과 교육 운영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여 일반 기관과 달리 학교는 적용을 예외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의 일상을 회복하려면 방역에 온 신경을 쓰며 교과 교육에 집중하기에도 벅차다. 교육부는 범교과 교육 매칭자료를 안내하며 할 일을 다 했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준비가 한창인데 어떤 교육과정을 고시하더라도 범교과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학교교육과정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 범교과 교육 관련 법령과 지침을 정비해서 학교의 일상을 회복하자.

한국일보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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