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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수능 안 봐도 지원하세요" 절박한 '정원 미달' 대학…장학금도 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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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편집자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2021학년도 전국 대학 추가모집 정원이 162개교 총 2만6129명이라고 밝혔다. 정시모집에서 미달된 인원이 전년도인 9830명보다 3배 가량 늘어났다는 의미다. 16년만에 최대치다. 고교 졸업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지는 시기가 온다는 경고는 늘 괴담처럼 교육계를 떠돌았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정원 감축에 대학들은 반발했고 당국은 점차 미온적으로 태도를 바꿨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한 여파는 고스란히 대학 공동체 붕괴로 이어질 전망이다. 대학의 위기는 대학을 중점으로 한 지역사회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더 늦기 전에 막아야 한다. 대학이 학령인구 절벽에 대응해 연착륙 할 방법을 고민해본다.

[대학 붕괴, 현실로](下)


장학금 주고 전형료 면제…"학생이 없어요" 지방대 한숨

신입생이 부족할 때 대학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입학홍보를 강화하고 학생 혜택을 늘려 최대한 신입생을 더 모으거나, 비용을 절감한다. 미봉책이다.

투자를 늘리고 교육의 질을 높여 학생이 스스로 학교를 찾게 하는 방법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등록금이 동결됐다는 이유로 재단은 요지부동이다.

◇"수능 안 쳐도 원서 내세요"… 특전 주지만 지방대는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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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서울 강남구 종로학원에서 열린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합격예측점수 설명회를 찾은 학무보들이 배치참고표를 살펴보고 있다. 이날 설명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라 최소한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한 채 온라인으로 생중계 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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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소재 모 대학은 올해 입학정원 1000여명 중 200여명을 추가모집으로 선발한다. 정시모집에선 경쟁률이 1대1에도 못 미쳤다. 추가모집에서는 다양한 특전을 내걸었다. 수능을 보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으며 전형료도 면제다. 특별장학금도 지급하고 수도권에 있는 캠퍼스와도 전과가 가능하도록 했다.

A 입학팀장은 "갈수록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데다 지난해는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입학홍보가 활발하지 못했다"며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대규모 미달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학생들이 우리 대학 이름조차 잘 모르다보니 학교 대상 설명회를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홍보방법인데, 대면 접촉이 힘들어지면서 학교 탐방 횟수도 많이 줄었죠. 그래서 광고를 해보려 했는데 방송 광고는 자정 전 시간대를 따려니 5억원을 달래요. 포털사이트 메인에 띄우려니 또 몇 천이 든대요. 학생은 계속 줄고, 등록금이 없으니 교육여건 개선에 투자할 돈은 자꾸 모자라고…. 악순환입니다."

전북 소재 모 대학 B 입학팀장 역시 "학령인구가 줄어듦에도 학생 모집을 해야 하고, 전에 비해 더 노력했지만 결과는 더 안 좋았다"고 털어놨다.

"'최근엔 '학생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취업이 잘 되는 공학계열 학과를 늘렸는데 그 쪽에서도 인원이 채워지질 않아요. 이 지역 학생들이 어려운 (이과계열) 공부를 좀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잘하는 친구들은 여지없이 수도권으로 빠지고요."

이 학교는 3700여명의 정원 중 800여명을 추가모집으로 충당한다. 추가모집 합격자에게는 장학금 100만원을 무조건 지급한다. 이와 별개로 학과에서도 50만~80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준다.

◇교수가 직접 청소를… 극단적 비용 절감도

대학들은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임금 동결 등의 방법으로 비용을 절감해왔다.

부산 소재 C 대학은 신입생이 점점 줄어들자 올해는 아예 청소용역업체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교수들이 직접 학교 청소를 해야한다는 말이다. 이 대학은 전체 정원 2300여명 중 1200여명을 추가모집으로 뽑는다.

"청소용역업체에 매년 17억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신입생이 확연히 줄다보니 이를 충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청소노동자분들은 계약 해지 이유가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기 위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는데 절대 아닙니다. 여력이 안 돼요. 워낙 상황이 어렵다보니 구성원들이 직접 청소를 해서라도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같은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건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쏠림현상이다. 경남 소재 모 대학 D 입학팀장은 "올해 고교 설명회를 가보면 한 반에 30명씩 채워졌던 교실에 20명씩밖에 앉아있질 않더라"며 "학생이 대폭 줄어드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면엔 교육투자를 늘리지 않으려는 사립대학교 재단들의 꼼수가 바탕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박순준 전국사립대교수연합회장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은 가장 간단한 비용절감 방법"이라며 "연봉 동결에 대해 교수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최근 이것이 위법하다는 판결도 속속 나오고 있는 만큼 구성원의 희생과 법인의 투자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 붕괴 눈앞에… 정원 줄이고 재정지원 늘려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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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9일 오후 광주 서구 마륵동 서남대병원 부지에서 철거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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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대규모 정원 미달 사태는 '대학 붕괴 도미노'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과거 폐교 사례를 보면 후유증은 교직원과 학생에게뿐만 아니라 지역공동체까지 영향을 미친다.

피해를 줄이고 대학도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정원 감축, 재정 지원 등의 해결책이 거론된다. 대학이 자진 폐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폐교 사례 보니… 임금 체불, 지역사회 황폐화

27일 교육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폐쇄(강제)·폐지(자진)한 대학은 17곳이다. 대부분 회계 부정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문을 닫은 경우다. 학령인구로 인한 폐교 현상과 원인은 다르지만 갑작스럽고 강제적인 폐교가 어떤 후유증을 낳는지는 참고할만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학내 구성원의 혼란과 교직원 임금 체불 등이다.

"저도 한 3년 정도는 다른 대학 시간강사로 일했죠. 하지만 전임교수로 일하다 시간강사로 일하니 마음 상할 일이 굉장히 많았어요. 결국 많은 경우 고학력 백수로 전락하게 되더라고요. 학생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주변 학교로 편입학했지만 원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해 자퇴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이덕재 한국교수발전연구원장, 전 성화대 교수)

이 원장은 "현재 폐쇄·폐지 17개 대학이 체불한 교직원 임금은 5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며 "최근 서남대가 병원 건물을 매각하고 임금 체불을 해결하면서 300억원 정도가 줄어든 수치"라고 설명했다.

학교 건물의 관리가 부실해지면서 학교가 일종의 우범지대처럼 전락하기도 한다. 유튜버 '스트리트오브코리아'가 1월 촬영해 올린 한중대 캠퍼스 풍경을 보면 창문이 모두 깨진 채 버려진 트럭, 머리와 목이 분리돼 망가진 인체 해부 마네킹 등이 널브러져 있다. 2018년 폐교된 후 출입이 통제되지 않으면서 일부 유튜버가 '공포체험' 장소로 한중대를 다녀오는 등의 해프닝도 있었다.

대학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자영업자들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슬럼화 현상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원 감축과 재정 지원 뒤따라야… 폐교 출구전략 마련도

대학 폐교 사태에 대비해 연착륙하려면 지금이라도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원 감축에 따른 손실은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 저자인 유원준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현재 전국 대학의 재외국민특별전형 등 정원외 입학 인원 규모가 13% 정도인데 이 인원을 줄이기만 해도 큰 무리 없이 정원을 감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폐교대학 업무를 지원하고 이를 도울 수 있는 종합센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학을 평생교육시설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연구소에서 발간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전문대학 체제 혁신방안’ 보고서는 전문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 방안으로 평생직업교육 선도 교육기관으로의 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관련 법을 개정해 사립대 재단이 재산매각이나 청산이 쉬워지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행 사립학교법 35조에 따르면 사립학교 재산은 교육사업을 운영하는 자나 교육법인에게만 귀속돼야 한다. 한 마디로 사립재단이 재산을 회수할 수 없다. 자발적으로 폐교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학교용지(토지)나 교육용 재산(건물)으로 자산 용도가 제한돼 있다는 점도 청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때문에 가격을 감정가액을 절반까지 낮춰 매각을 시도해도 유찰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부 관계자는 "사립학교 재산을 사고파는 것이 쉬워지면 그 피해가 학생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공익적인 이유로 논란이 있다"고 했다.

최민지 기자

최민지 기자 mj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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