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유 아닌 '비폭력 신념' 병역거부 첫 인정, 같은 이유라도 '신념'에 따라 판단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종교적 이유가 아닌 개인의 신념으로 인한 병역 거부가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인정 받았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도 사정이 인정되지 않아 유죄가 확정된 경우도 나왔다. 판결이 엇갈린 이유는 병역거부자들의 진정한 양심이었다. 이들이 비폭력 평화주의라는 신념을 갖게 된 동기, 신념의 일관성 등을 면밀히 따져 진정한 양심에 해당하는지를 엄격하게 평가한 셈이다.
최근 대법원은 예비군법 및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개인의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한 첫 사례다. 재판부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하더라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면 예비군법과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3년 2월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예비군훈련, 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그는 훈련에 불참한 것은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행위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선 1·2심은 A씨의 신념이 진실하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무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법리적 오해 등이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교적 신념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 따라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을 거부한 것으로 보고, 예비군법과 병역법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했다.
현행 예비군법(제15조 9항 1호)은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사람이나 훈련 받을 사람을 대신해 훈련 받은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병역법(제90조 1항 1호)은 병력동원훈련소집 통직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일시에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점검에 참석하지 아니한 사람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같은날 대법원은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또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B씨와 C씨에 대해 병역거부를 유죄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는 2016년 12월 "폭력을 내면화하는 군대에 비폭력 수단으로 저항하겠다"며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C씨는 "국민을 향해 작전하고 학살하는 군대에 들어갈 수 없으며 총을 잡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2018년 6월 27일 입대거부를 선언해 같은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두 사람은 1·2심에서 각각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상소했다.
대법원은 B씨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집총 등 군사훈련과는 본질적 관련성이 없는 권위주의적 군대문화, 군대 내 인권침해·부조리에 기초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또 병역거부 이전에 양심적 병역거부나 반전·평화 분야에서 활동한 구체적인 내역이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점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은 근거가 됐다.
C씨 역시 권위주의적 군대 문화를 주된 병역거부 사유로 들었다. 모든 전쟁과 물리력 행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동기·상황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고 이에 가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점도 참작했다. 특히 C씨가 집회에 참가해 경찰을 폭행한 사실로 형사처벌 받은 전력도 있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한편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 거부 첫 판례에서 "양심과 관련성 있는 간접 사실 또는 정황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는 기준을 내놓은 바 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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