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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4 (금)

나경원·이언주 발목 잡은 ‘강경 보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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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세훈 후보(왼쪽)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뒤 나경원 후보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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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기는 서울시장 선거가 돼야 한다.”

최종 결과 발표 직전, 나경원 후보의 인사말에선 경선 탈락을 예감한 승복의 기운이 묻어나지 않았다. 경선 과정에서 당내에 피어오른 ‘나경원 대세론’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진석 공천관리위원장에게 건네진 결과지에 적힌 최종 승자는 오세훈 후보였다. 국민의힘에선 나 후보에게 덧씌워진 강경 보수 이미지와 선호도 확장성의 한계가 당원으로 한정짓지 않은 ‘100% 시민 여론조사 경선’에서 약점으로 작용해 막판 ‘이변’의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나 후보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4·7 보궐선거 서울·부산시장 후보 경선 결과 발표’가 끝난 뒤 “(결과에) 승복한다. 우리 당 승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짧은 소감을 내놓았다. 나 후보 쪽 캠프에는 상승세를 타던 경선 분위기와 다른 결과가 나오자 아쉬워하는 기색이 강했다. 나 후보는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한 뒤 4명으로 압축된 최종 경선에서 진행된 후보 간 세차례 맞대결 토론과 합동토론에서 모두 이기며 최종 후보 자리를 손에 쥐는 듯했다. 그러나 ‘100% 일반 시민 여론조사’(2~3일) 방식의 경선에서 득표율 36.31%를 기록하며 오 후보(41.64%)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여성가산점을 얻었지만, 여론조사에서 오 후보에 약 8% 정도 뒤진 격차를 뒤집지 못했다.

오 후보는 경선 결과가 발표된 뒤 울먹일 정도로 감격해했다. 그는 “반드시 단일화를 이뤄내겠다. 분열된 상태에서의 4·7 선거는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는 길”이라며 “국민의 지상명령을 받들어서 단일화의 힘으로 국민 여러분의 힘으로 반드시 정권을 심판해내는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의지를 다시 굳게 밝힌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이번 결과를 두고 지난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로서 대여 투쟁을 이끌며 각인된 나 후보의 강경 보수 이미지가 결국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많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극우 집회에 참석한 행보 등도 이런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나 후보는 인물 선호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선 과정에서 중도층 공략을 꾀했지만, 그럴수록 오세훈 후보를 비롯한 상대 후보들은 나 후보를 ‘강경 보수’ 틀 안에 묶어두는 협공을 가했다. “정치인이 10년, 20년 하면서 쌓아온 본인의 정체성이란 게 있고, 국민들이 기억하는 모습이 있다”며 나 후보를 겨냥한 오 후보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결국 100% 여론조사 경선에서 나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중도층과 가까운 오 후보에게 지지가 쏠린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에 참여한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확장성에 한계가 있는 나 후보보다 오 후보를 밀어올려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2차 단일화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 후보 쪽은 결과를 수용하면서도 여론조사에 여당 지지자까지 포함되면서 나 후보를 배제하는 역선택 가능성을 언급했다. 나 후보 캠프 관계자는 “여론조사 문항을 보면 지지 정당을 묻는 문항이 없다.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응답자 가운데는 민주당 지지자가 있을 수 있는데, 이들에게도 굳이 국민의힘 후보 중 한명을 뽑아달라고 했다”며 “그렇게 되면 다른 당 지지자들은 국민의힘 후보 중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거부감이 적은 사람을 뽑게 된다”고 말했다. 당원을 배제한 일반 시민 여론조사가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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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후보(가운데)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뒤 박성훈(왼쪽), 이언주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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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선에서 ‘강경 보수’의 틀에 갇혀 주저앉은 또다른 후보는 이언주 부산시장 예비후보다.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경선에서 박형준 후보의 우세가 일찌감치 점쳐졌지만, 박민식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낸 이언주 후보가 얼마나 추격하느냐도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 후보는 21.54% 득표율을 기록해, 박형준(54.40%) 후보와 박성훈(28.63%) 후보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단일화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짧게 말했다. 이 후보의 ‘보수 여전사’ 이미지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아 박민식 후보 쪽의 표까지 끌어오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합리적 보수’를 자임해온 박형준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사찰 문건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보고받았다는 의혹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지며 여권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언주 후보 등에 견줘 확장성의 우위를 앞세워 무난한 승리를 가져갔다.

박 후보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의힘이 비판만 하는 정당이 아니라 대안을 가진 정당,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임을 보이겠다. 정치적 공격을 넘어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그런 정당으로 거듭났다는 걸 부산 선거로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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