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1 (일)

이슈 게임정책과 업계 현황

수천만원 쓰면서도 몰랐던 '집판검'의 비밀 풀리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NC 다이노스 우승 세리머니에도 등장한 엔씨소프트 `리니지` 대표 아이템 `집행검`. 수천만 원을 호가해 `집판검(집을 팔아야 사는 검)`으로 불린다. [사진 제공 = 엔씨소프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이 업계 최초로 아이템 강화 확률 공개 계획을 밝히며 게임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용자들의 연이은 불만에 넥슨 외에 주요 게임사도 확률 공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확률 규제 법제화'를 못 박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지나친 사행성이나 도박화를 막으며, 국내 게임사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단순히 확률 공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게임 업계 비즈니스 모델(BM)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뿔난 이용자들의 비판에 직면한 게임사들은 확률 공개 여부와 시점, 방식 등을 고민하고 있다. 2004년 '메이플스토리'를 통해 처음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했던 넥슨이 이번에도 첫발을 뗐다.

넥슨은 지난 5일 "우리 회사가 서비스하는 주요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서 모든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단계적으로 공개하겠다"고 자구책을 내놓은 상태다. 먼저 논란의 중심이 됐던 '메이플스토리' 관련 확률을 공개한 데 이어 오는 13일에는 '마비노기' 관련 이용자 간담회를 열고 현장 목소리를 들을 예정이다.

이처럼 넥슨이 움직이면서 다른 게임사들도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넥슨의 발표 이후 3N의 나머지 축을 맡고 있는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역시 "이용자 의견을 면밀히 검토하고 수렴하는 단계를 거친 뒤 적극적으로 반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 게임사들은 2015년 7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를 시작했고,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규제 내용을 확대해 왔다. 이번에도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 산하 자율규제평가위원회가 이달 중으로 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고,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이 내용을 검토해 적용 여부를 정할 방침이다.

다만 현재 국내 게임사들은 자율규제 강령에 따라 유료로 구입하는 캡슐형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확률을 공개하고 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최근에는 뽑기로 얻은 여러 아이템을 모아 또 다른 아이템을 완성하는 '컴플리트 가차' 방식이 유행하고, 시간대에 따라 확률이 변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보다 확실한 공개를 요구하겠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진흥법' 전부 개정안은 유료 아이템과 유·무료 혼합 아이템을 가리지 않고 모든 확률을 공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고, 유동수 민주당 의원도 지난 5일 '컴플리트 가차' 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근 판교에 위치한 게임사 사옥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는 문화가 생겼을 정도로 이용자들 불만이 많고, 야당에서도 동조하는 분위기라 예년보다 법제화 가능성은 높아진 상태다.

다만 업계에서는 게임 내 사행성을 줄이기 위해 자율규제를 강화하겠다면서도 BM 자체를 법으로 규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 3N의 한 임원은 "현재 대부분의 국내 게임사는 자율규제 강령을 지키고 있고 강화되더라도 따를 분위기"라며 "정작 자율규제 수준의 조치도 안 지키는 외국 게임사들이 존재하는데 아예 법제화하면 애초에 국내 게임 산업 본연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만든 게임산업진흥법이 오히려 족쇄가 될까 두렵다"는 걱정을 남겼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공개를 두고 본질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에 확률을 알고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천만 원, 수억 원을 써가면서 빠져드는 일부 '핵과금' 이용자 위주로 움직이는 BM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게임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수억 원씩 지불하는 일부 이용자 대신 많은 이용자가 소규모 금액을 써서 돌아가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며 "돈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줄이고 돈을 쓸 사람은 쓰되 돈 대신 오랜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이용자들도 불이익을 보지 않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모바일 게임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취미 생활에 지출하는 수준 이상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잦다. 급기야는 게임 내부 정책이 흔들리기도 한다. 엔씨소프트는 인기 모바일 게임 '리니지M'에서 지난 1월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문양 시스템에 완화된 확률을 적용했다가 이전에 수천만 원, 수억 원씩 지불하고 이 시스템을 완성했던 이용자들의 항의를 받고 롤백(특정 시점으로 되돌리는 행위)을 결정해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아예 확률 문제를 빼기 위해 일정 금액을 결제한 후 이용자들이 특정 기간 레벨업하거나 미션을 해결하면 보상을 주는 '배틀 패스'를 도입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유료 결제 시스템은 남겨뒀지만 확률이 적용되지 않고, 일정 시간 이상 게임을 직접 진행해야만 보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더 공평하다는 인식이 있다. 위 교수는 "게임사들도 수익을 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아이템을 판매할 때 돈과 시간의 함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확률형 아이템 : 게임 내부에서 특정 캐릭터나 무기 등을 정가에 판매하는 대신 '뽑기'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 이용자가 어떤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을지 구매 이전에는 알 수 없어 게임의 재미를 키워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용익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