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관련 전문가들도 깜짝 놀라는 ‘지분 쪼개기’나 ‘희귀 나무 심기’ 같은 꼼수까지 써 보상을 극대화하려 한 정황에 국민적 분노도 커지고 있다.
LH는 2009년 10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해 탄생한 공기업이다. 택지개발이나 도시개발부터 주택 분양까지 전 과정을 수행한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와 LH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8010만원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채혜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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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주공 통합 반발…10년 만에 통합 노조
LH는 1990년대 들어 토공이 각종 신도시를 조성하며 주택건설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주공과 업무가 중복되자 양 회사를 통합해 새 법인으로 설립됐다. L은 토공(Land)이고 H는 주공(House)이다.
이 과정에서 토공과 주공 직원들은 각각 통합에 크게 반발했는데 LH 설립 이후에도 적대적인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조 활동이다. 통합 이후에도 이전 회사의 노조가 각각 활동했고 통합한 지 10년이 지난 2019년에야 통합 노조가 탄생했다.
익명을 요구한 LH 직원은 “부서장이 토공 출신이냐 주공 출신이냐에 따라 부서원의 승진 여부가 달라진다는 얘기가 공공연했다”며 “2009년 이후 통합된 LH로 입사한 사원이 늘어나면서 그나마 적대적인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3기 신도시로 추가 확정된 광명·시흥 지구에 LH 공사 직원의 땅투기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3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모습. 장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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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직원들은 토지를 개발하고 주택을 분양하는 것이 주요 업무라 부동산 관련 지식이 풍부하다. 특히 가장 민원이 많아 최전방 부서로 꼽히는 보상 업무는 LH 신입사원이 가장 먼저 배정받는 부서다. 대개 10년 차 직원의 경우 평균 4년 정도는 보상 관련 업무를 했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신입사원도 땅에 대한 지식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LH의 또 다른 직원은 “입사 초기부터 친분 있는 동료끼리 회식을 하면 주된 화제가 부동산 투자 얘기”라며 “어떤 선배는 어디 어디에 땅이 있고, 얼마 벌었고, 어디는 적금을 깨서라도 지금 사둬야 하고 여윳돈이 없으면 서너 명이 모여서 같이 사서 묻어두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LH에선 1만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신도시 개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는 부서는 크게 신도시 후보지를 결정하거나 개발을 추진하는 사업부와 후보지가 결정된 후 토지 보상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 정도다.
신도시 사업부는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신도시 후보지를 고르고 이 중에서 개발지를 확정한다. 말 그대로 일찌감치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다. 보상 업무는 대부분 직원이 신도시가 지정된 직후 알게 되는 구조다. LH 직원들이 “1만 명 중에 신도시 후보지 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부서는 일부에 부과하고 그것도 높은 직급이나 알 수 있는데 싸잡아 욕먹는 게 속상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신도시 사업부나 보상 업무를 맡은 직원은 관련 정보를 보기 위해 PC에 접속할 때마다 접속 기록이 남는다. 자료 유출을 막기 위해 관련 정보를 인쇄하면 암호화된 수식어로 출력이 된다. 신도시 사업 관련 업무를 맡은 직원은 정보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비밀유지서약도 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 번째)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 발표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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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막을 안전장치 미비…‘갑질’ 논란도
그런데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활용한 투기를 막는 안전장치는 이뿐이다. 스마트폰으로 PC 화면만 찍어도 정보를 쉽게 빼돌릴 수 있다. 실제 2018년 고흥 원흥지구 개발도면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때도 스마트폰이 동원됐다.
LH 직원이 원흥지구와 관련된 개발계획서를 LH 군 자문위원에게 메신저로 전송했고 이후 군 관계자들이 도면을 사진으로 촬영해 자료가 유출됐다. 유출된 도면은 인터넷에 게재까지 됐다. 하지만 당시 관련 직원이 받은 징계는 ‘경고’ 수준이었다.
LH 규정에 '미공개 개발정보 이용 금지' 조항이 있지만, 지난 10년간 이 조항에 근거해 적발·처벌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처벌 규정도 ‘내부규정에 의한 자체 징계’일 뿐이다. 이와 달리 금융 공기업은 이런 사실이 적발될 경우 검찰에 고발된다.
LH는 집을 지을 택지를 조성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하고, 임대아파트에 대해서는 임차인 관리까지 한다. 모든 업무가 이른바 ‘갑’의 역할이다. 건설업체는 공사 수주와 대금 결제에 불이익 생길까, 임대아파트 입주민은 하자·보수를 해주지 않거나 재계약이 안 될까 싶어 LH 눈치를 본다. 이 때문에 LH를 둘러싼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선 ‘LH 갑질’ 관련 청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9월엔 대구의 한 중소업체가 “피를 토하는 민원인에게 (LH직원이)협박과…” 등의 글을 남겼다.
2018년엔 부산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감독 업무를 맡은 LH 차장급 직원이 20살 이상 나이가 많은 하도급 업체의 현장 직원에게 “(집합에) 늦으면 초당 천 원” “억울하면 계약조건 봐라” 같은 고압적인 문자를 남겨 논란이 됐다.
같은 달 LH 간부급 직원이 대구의 한 국민임대 아파트 입주자 대표에게 “못 사는 게 저 XX 한다니까” “이 XXX, 국민임대 살면서. 국민임대 살면서 주인(LH직원)한테 그런 소릴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해 문제가 됐다. 당시 문제가 됐던 LH 직원들에 대한 징계는 1개월 감봉이 전부였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어지간한 비리는 눈감아주는 LH의 '비리 불감증' 조직 문화가 문제를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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