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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차기 대선 경쟁

[정치행간] 검복 벗은 윤석열, 대선 등판의 나비효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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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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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임기를 다섯 달 남기고 사퇴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며 눈을 감고 있다. 윤 총장은 최근 여권의 중수청 설치 추진을 두고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의 파괴'라며 맹비난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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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지사가 의문의 1승을 거두는 것 아닌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검복을 벗고 사실상 차기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상황을 두고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던진 촌평이다. 이 지사의 독주 체제로 진행되던 내년 대선 구도가 윤 전 총장 등판으로 지각 변동이 불가피해진 상황. 이 지사로선 강력한 도전자를 맞았지만 이게 오히려 이 지사에게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액면상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은 마이너스 관계인데도 이런 역설적 가설이 나오는 것은 한국 정치판의 오묘한 역학 관계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참전 불똥이 어디로 튈지는 현재로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강력한 야권 후보 출현이 다양한 나비 효과를 초래해 다소 밋밋했던 차기 대선 경쟁이 비로소 역동적 드라마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① 이재명 타격 vs 이재명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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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가 1월 수원시 도청 브리핑룸에서 경기도 공공기관 3차 이전 추진 계획을 밝히고 있다. 경기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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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이 지사가 지지율 20%의 박스권 상단을 허물고 대선 레이스 1위로 치고 나간 흐름은 윤 전 총장의 지지율 하락과 맞물렸다. 지난해 말 이른바 '추·윤 갈등'으로 대선 주자 1위까지 올랐던 윤 전 총장이 여론의 관심권에서 벗어난 사이 이 지사가 그 자리를 꿰찬 형국이었다. 친문 집권 세력을 견제하려는 중도층과 보수층 일각이 비문(非文)의 이 지사를 밀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지난달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이 지사 지지층은 진보 45%, 중도 29%, 보수 18%로 중도· 보수층의 지지율이 의의로 두텁다. 윤석열 등판은 그간 이 지사 등으로 흩어졌던 정권 심판 민심을 결집시킬 가능성이 커 직접적으로 이 지사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실제 8일 공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이 28.3%의 지지율로 단숨에 1위에 오르면서 이 지사(22.4%)가 2위로 주춤해졌다.

하지만 강력한 야권 주자의 등장이 이 지사에겐 여권 결집이라는 호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찮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단기적으로 이 지사 지지율이 빠질 수 있지만 이 지사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민주당 내 경선 통과”라며 “야권 후보가 지지부진하면 이 지사 흔들기가 강해질 수 있지만 강한 상대가 등장하면 오히려 내부 갈등 요인이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당내 최대 주주인 친문 세력과 여전히 긴장 관계에 있는 이 지사 입장에선 야권의 강한 후보가 친문들의 내부 견제를 상쇄시켜 경선 통과가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이 지사의 우군인 정성호 의원은 “호남이나 친문이 아직 전폭적 지지를 하지 않는 상황인데, ‘될 사람으로 가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이 지사의 확장성은 더 커질 것이다”고 자신했다. 윤 전 총장이 정권심판론의 구심점으로 치고 나올 경우 '이재명 대 윤석열' 양강 구도가 조기에 형성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② 정권심판론 vs 인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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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떠나면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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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 윤석열' 양자 대결은 이 지사 입장에선 경선 통과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본선전도 크게 나쁘지 않은 구도다. 윤 전 총장이 반문(反文) 주자의 성격을 띠지만 이 지사 역시 친문과는 결이 달라 윤 전 총장의 칼날을 비켜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윤 전 총장이 경제나 복지 등 정책 측면에서 뚜렷한 비전이나 성과를 보여준 게 없는 것도 이 지사로선 우위에 설 수 있는 대목이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전문위원은 “결국 중도층을 잡아야 하는데, 정권심판론만으로 어렵다”며 “윤 전 총장이 정책 경쟁에서 어떤 능력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요컨대 친문 후보가 나오면 윤 전 총장의 정권심판론이 힘을 받을 수 있지만 이 지사와의 대결 구도에선 인물론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나 코로나19 상황 악화 등으로 현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커지면 이 지사가 오히려 샌드위치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윤 전 총장 돌풍이 계속 거세지면 이 지사로서도 현 정권과의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 지사가 지금은 친문과의 충돌을 자제하고 있지만, 마냥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며 “현 정부와 거리 두기를 본격화하면 친문 지지층과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친문의 지지를 얻으려다 되레 지지율 추락을 겪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만 보더라도 친문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③ 야권 결집 vs 야권 분열

그간 야권 후보가 아무리 지지부진했더라도 윤 전 총장이 야권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을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잡아들인 윤 전 총장을 보수 진영이 전폭 지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당장 홍준표 무소속 의원부터 “(현 정권이) 윤석열을 밀어냄으로써 야권 분열의 단초를 만들었다”며 견제에 들어간 상태다. 이철희 전 의원은 “보수 진영이 대선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로 윤석열 카드를 띄우고 있지만 과연 윤석열을 미래의 보수 대안으로 삼으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총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손을 잡아 제3지대의 영향력을 키워 국민의힘을 흡수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아직은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민의힘에선 윤 전 총장의 등판을 환영하면서도 그의 파급력과 정치력을 지켜봐야 한다는 기류도 여전하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다음 총선까지 아직 시간이 많은 상황에서 해쳐 모여식으로 의원들이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합류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현상’을 비롯해 그간 제3지대 후보가 상당한 지지세를 보이다가 결국 실패를 되풀이했던 것도 윤석열발 야권 정계 개편 가능성을 낮게 보는 근거다. 윤 전 총장은 일단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지켜보며 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치적 결단의 타이밍이 늦거나 야권 단일화 논의가 지지부진하면 구심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엄존한다. 최악의 경우 야권 결집이 아니라 야권 분열을 고착화시키고 야권의 세대 교체를 막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④ 강대 강의 양자 구도 vs 중도 경쟁의 다자구도

윤 전 총장이 본격적 검증 무대에서 별다른 능력을 보이지 못하면 구심력이 약해져 대선판이 양자 구도 대신 막판까지 다자 구도로 흐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이나 야권 단일화 여부 등을 끝까지 지켜봐야 후보 윤곽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여권에서도 이 지사에 대한 견제 심리가 커져 이낙연 대표가 재부상하거나 친문 제3후보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윤 전 총장은 이제부터 정치력과 정책 능력을 검증받을 텐데, 외교나 경제, 복지 등에 역량이 있을지 의문이다”며 “이 지사에 대한 도덕성 검증도 본격화해 이재명, 윤석열 모두 본선에 못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선이 다자 구도로 전개되면 중도 성향의 합리적 주자가 기회를 잡을 여지도 없지 않다. 최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나경원 전 의원을 제친 것도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호라는 해석이다. 이를테면 야권 경선 과정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부상하면 여권 후보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간 야권 주자들의 지지율을 잠식해왔던 윤 전 총장 거품이 가라앉을 경우 '강 대 강' 대결보다 여야 간 중도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전의 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송용창 논설위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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