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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수조원 추정 '이건희 컬렉션' 향방은…상속세로 내거나 삼성家 통큰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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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미술품·서양근현대미술품 등 1만여점

'최고만 고집' 이 회장 생전 40년 모은 걸작

초고가 컬렉션 900점 수백억…수천억원대

알베르토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III' 대표적

보물 82점 등 국보급 문화재 160여점도 포함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전용 미술관 새로 건립

문화재 일부만 공공기관 기증 등 여러 절충안

삼성가, 다음달 말까지 미술품 운명 결정해야

아시아경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좌), 피카소 '도라 마르의 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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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값을 매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삼성가의 결정에 한국 미술 발전의 운명이 달렸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내의 한 갤러리 대표가 최근 미술계 최대 화두인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에 대해 이처럼 평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남긴 미술품 1만2000여점이 삼성가의 상속세 마련을 위해 시장에서 처분될 경우 국가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국가가 미술품을 상속세로 받아주거나 삼성가가 기부라는 통 큰 결단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현재 미술품 감정 작업 막바지 단계로 접어든 삼성가는 상속세법에 따라 다음 달 말까지 미술품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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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은 한국 고미술품·근현대미술품, 서양 근현대미술품 등을 총망라한다. 미술품 중에서도 ‘최고’만 고집한 이 회장이 생전 40년간 모은 걸작들이다. 시장 가치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1조원에서 최대 3조원에 이른다는 평가도 있다.


이 가운데 초고가 컬렉션은 900여점에 달하는 서양 근현대미술품이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작품도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청동상 ‘거대한 여인 III’다. 자코메티는 20세기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스위스 조각가다. 이 회장이 보유한 작품과 유사한 자코메티의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는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55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한 화랑 대표는 "이 회장의 수집품 목록이 정확히 공개되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코메티 작품을 최고가로 본다"며 "최근 미술시장 분위기를 보면 수천억 원은 족히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방 안에 있는 인물’도 1000억원대를 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작품이다. 이보다 7년 뒤 그려진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는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528억원에 낙찰됐다. 이는 당시 역대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액으로 그 전까지는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가 최고액 기록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도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 ‘건초더미’는 2019년 경매에서 인상주의 작품 역대 최고가인 1316억원에 팔렸다. 이 밖에 러시아 추상표현주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1903~1970), 벨기에 초현실주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 스페인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등 이 회장의 보유 작품은 그 가치와 개수에서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술품 경매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로스코나 잭슨 폴록(1912~1956)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의 작품이 잘 팔린다"면서 "인상파나 고전은 너무 희귀해 좋은 작품이 출품되면 부르는 게 값일 것"이라고 평했다.


이건희 컬렉션에는 우리 국보 30점과 보물 82점 등 국보급 문화재 160여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수근(1914~1965)·이중섭(1916~1956)·김환기(1913~1974)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도 셀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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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무제(1956)'.


미술계에서는 한결같이 삼성가가 미술품을 시장에 내놓는 게 최악의 경우라고 말한다. 정부가 신속한 미술품 물납제 도입으로 삼성가의 세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론 등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도 인정한다. 한 미술단체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내려온 문화예술에 대한 사랑의 명맥을 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절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삼성가가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아예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을 새로 짓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 등지의 세계적 재벌들이 이미 해온 방법이다. 미국의 금융 재벌 J P 모건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 작품을 모두 기증했다. 미국의 석유 재벌 제이 폴 게티는 로스앤젤레스에 게티 미술관을 지어 사회로 환원했다. 뉴욕 현대미술관도 후대까지 이어진 록펠러가의 꾸준한 후원이 없었다면 세계 최고 현대미술관이라는 명성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인의 미술품을 미술관에 기증할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공공기관보다 공익재단이 소유한 미술관에 기부하는 게 좋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미술품 보관비용을 감당하고 작품의 다양성을 확대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런 가운데 우리 문화재 일부는 공공기관에 기증하되 나머지는 삼성문화재단이 소유한 리움과 호암미술관에 기증하는 방식이 강력히 거론되고 있다. 김희근 한국메세나협회장은 "공익재단 기부라면 사회에 기부하는 것과 같다"면서 "공익재단이 없어지면 관련 소장품 등은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니 궁극적으로는 공공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직 미술품 기증 여부 등에 관해 결정된 게 없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작품 감정이 끝난 뒤에야 거처가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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