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심자로 20명이 발표됐지만 여론이 싸늘한 가운데, 정부는 서울 등 도심 공공 개발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투기 내막이 전부 드러나지 않은 데다 재발 방지책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 후보지를 이달 말 추가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공공 주도 부동산 공급 대책에 균열이 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취지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광명시흥 신도시 지역에 토지를 구입한 LH 직원들의 대규모 대출 과정을 집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이번 LH 투기 사건은 은행권 특정 지점에서 대규모 대출이 집단으로, 집중적으로 이뤄졌기에 가능했다"며 "대출 과정상 불법 부당 또는 소홀함은 없었는지, 맹점이나 보완점은 없는지 등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의혹 해소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또 다른 개발 예정지를 발표하겠다고 나서 되레 논란에 불을 지폈다. 홍 부총리는 이날 "2·4 주택 공급 대책을 포함한 부동산 정책은 이미 발표한 계획, 제시된 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지방자치단체 등 추천을 받아 사업 여건이 우수한 후보지를 선정해 3월 말까지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 등 8곳의 공공 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를 공개한 데 이어, 이달 2차 후보지를 선정해 발표하겠다는 뜻이다.
공공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면 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정비 사업 관리자로 참여한다. 이런 밀어붙이기식 공공 주도 개발이 이번 사태의 여파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지난 11일 국민의힘은 "더 이상 이번 사태를 단순히 LH 투기로 축소해서는 안 되며 성역 없는 전면 재조사를 요구한다"며 "공공 재개발, 국토교통부와 LH 중심의 신도시, 택지 개발 정책을 전면 재조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편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지용 기자]
재보선 불똥 튈라…文, 卞사의 전격수용
변창흠 국토장관 사의
文 "卞,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2·4 공급대책 공백 우려에
사표 수리는 이달말 할듯
LH 사장 김세용 내정 취소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책임을 물어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경질하기로 한 것은 투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 합동수사본부의 1차 조사 결과가 '부실 조사' 논란에 휩싸인 데다 이날 LH 본부장의 자살 사태까지 터지면서 변 장관은 취임 두 달여 만에 결국 옷을 벗게 됐다. 특히 다음달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심 이반이 정권 심판론으로 확산되며 여당의 전패 가능성까지 나오자 문 대통령도 결국 경질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성난 부동산 민심에 임기를 1년 남긴 문 대통령이 급속한 레임덕 위기에 빠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변 장관이 오늘 오후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광명시흥 등 3기 신도시 지역에 대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제기한 지 열흘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사의를 수용했다. 변 장관은 2·4 부동산 공급 대책 후속 작업이 마무리되는 3월 국회가 끝나는 대로 이르면 이달 중에, 늦어도 다음달 7일 보궐선거 전에는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변 장관은 취임 전에도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이며 힘겹게 청문회를 통과했지만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LH 사장 경력을 살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전환하는 2·4 공급 대책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LH 투기 의혹이 확산된 데다 경찰에 수사 의뢰된 20명 중 11명이 변 장관이 LH 사장 재임 시절 땅 투기에 나선 것으로 드러나며 경질론에 휩싸였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변 장관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갔고 전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변 장관 해임을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당장 변 장관이 주도하던 2·4 공급 대책도 타격을 입게 됐다. '변창흠표' 대책으로 불릴 만큼 문 대통령도 적극 지원했지만 변 장관이 사실상 '시한부' 장관으로 전락하면서 힘이 빠지게 됐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도 이날 즉각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현재 국토부가 참여한 합동수사본부에서 LH 투기 의혹 2차 조사가 진행 중인 데다 2·4 공급 대책의 후속 입법 과제까지 마무리하라는 것이다.
연일 LH 사태에 대해 지시해 온 문 대통령은 이날도 1차 조사 결과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듯 "1차 조사는 시작일 뿐이고 지금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며 "투기 전모를 다 드러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공직자, LH 임원은 물론 가족과 친인척을 포함해 차명거래도 철저히 수사하라"며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 만큼 끝까지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LH 사장 자리는 한동안 공석이 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임명 절차를 진행 중이던 LH 사장 후보자에 대해 LH 임원추천위원회에 재추천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차기 LH 사장 후보로 김세용 SH공사 전 사장이자 현 직무대행이 유력 후보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LH 사태를 계기로 수십억 원 규모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김 대행을 LH 사장으로 앉히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임성현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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