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 "사실상 수사지휘" 반발하며 보고서 작성
향후 사건처리 단계서 양측 간 전면전 비화할 수도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5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 사건의 ‘기소 권한’을 두고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결국 정면으로 충돌했다. 공수처가 검찰로부터 이첩받은 현직 검사 연루 사건을 다시 검찰로 재이첩하면서 “수사 완료 후 기소 여부 판단을 위해 사건을 송치해 달라”고 요구한 공문을 보낸 데 대해 검찰 수사팀이 ‘사실상 수사지휘’라며 작심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공수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자칫 두 수사기관 간의 극한 대립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수사팀 "공수처장 논리 해괴망측" 반발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검 수사팀은 이날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공수처법 규정 검토’라는 제목의 A4용지 8쪽짜리 보고서를 게시하며 공수처의 ‘수사 완료 후 사건 송치’ 요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른 수사기관을 향해 일선 검찰청이 직접 발끈하고 나서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공수처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수사확대 무마 외압 의혹), 이규원 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불법출금 요청 실행자) 등의 사건을 12일 수원지검으로 재이첩하며 ‘수사권만 넘긴 것’이라고 주장한 건, “재량권 일탈ㆍ남용이 있는 위법한 행정행위”라는 게 검찰 보고서의 결론이다.
특히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은 게시글 본문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에게 직격탄도 날렸다. 이 부장검사는 “공수처장이 공문에 수사지휘성 문구를 떡 하니 기재해 놓고, 이후 쏟아지는 질문에 수습이 되지 않으니 ‘사건이 아니라 (수사)권한(만) 이첩한 것’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웠다”고 썼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수사팀의 의견일 뿐, 공수처법 해석과 관련해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꼭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수사팀은 이 보고서를 대검과 법무부에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권만 이첩" vs "이첩 후엔 사건관여 권한 없어"
공수처와 대검 간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은 ‘고위공직자범죄를 저지른 검사에 대한 기소권’의 관할 문제다. 공수처는 ‘독점적 권한’을 내세우고 있다. 다만 현재 수사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여서 ‘수사’ 부분만 검찰로 재이첩한 것이며, 향후 공소제기 결정은 당연히 공수처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 입장은 정반대다. 수사팀은 보고서에서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한 경우, 공수처는 더 이상 그 사건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맞섰다. 공수처법과 형사소송법,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에 비춰, ‘이첩’이란 “사건을 다른 기관으로 보내, 그 기관이 가진 권한을 행사해 사건을 처리하게 하는 행위”이며, 어떤 법률을 봐도 “공수처의 독점적 기소권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수처가 사건을 검찰에 이첩(또는 재이첩)했다면, 검찰 권한(수사 및 기소)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사팀은 또, “공수처가 기소를 위해 사건을 다시 넘겨받으려면 ‘송치’가 아니라 ‘이첩’을 요구해야 하나, 이첩 요건마저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공수처엔 이 사건과 중복되는 사건이 없고 △수사도 검찰에서 상당히 진행됐으며 △수사 대상자들의 공수처 이첩 주장으로 인해 오히려 공수처 수사에 ‘공정성 논란’이 있는 점 등을 사유로 제시했다. 수사팀은 심지어 “재이첩한 사건을 재재이첩 요청하는 건 수사기관 간 ‘사건 돌리기(핑퐁)’나 다름없다”는 우려도 표했다.
김진욱 "입장 그대로"... 법조계선 "협의 필요"
검찰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 공수처는 당분간 기존 입장을 고수할 전망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날 출근길에서도 “어제 입장 그대로”라며 기소 주체는 공수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향후 사건 처리 단계에서 양측 간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에선 이제라도 두 기관이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가 많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차장검사는 “사전 협의도 안 했는데 공수처가 이제 와서 당장 협의하자고 할지 의문”이라며 “그럼에도 최대한 빠른 시기에 기소 부분과 관련해 검찰과 유의미한 의견 교환이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고 조언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