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 서울 도심 공공개발 등 정부의 주택공급 주역이어야 할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투기집단'이란 오명을 쓰고 추락하고 있다. 민심은 LH에 더 이상 주택공급 사업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넘어 해체 수준의 대대적인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LH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더해져 출범한 지 12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현 수준의 비대한 조직을 분산하거나 슬림화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통한 주택시장 안정이 시급한 상황이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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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역사의 먹구름
LH는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합병해 출범한 만큼 기존 두 기관에서 했던 업무를 모두 담당하고 있다. 토지 취득과 개발에서부터 주거복지 실현을 위한 공공주택 분양, 취약계층과 청년‧신혼부부 대상 주택 공급(임대 포함) 등 일련의 과정을 모두 LH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출범 후 12년 동안 조직은 비대해졌다. 작년 말 기준 총 임직원은 9566명, 자산은 184조원(2020년 3분기 기준)에 달한다. 웬만한 대기업 수준이다.
비대한 조직이 된 데다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국가 주도의 개발 사업을 독점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탈을 일으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6번째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지구를 LH 직원들이 투기 대상으로 삼은 것이 드러났고, 이후에도 관련 의혹들이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다. LH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을 찍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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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LH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조직 비대화 뿐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과거와 같은 개발방식으로 신도시를 조성, 주택을 공급해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익명의 한 대학 부동산학과 A교수는 "LH가 개발대상지역 토지를 수용해 개발 후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1970~80년대)개발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지금 시대에서는 맞지 않는다"며 "개발 뿐 아니라 LH는 100만가구가 넘는 임대주택을 운영하는 주체이기도 해 이번 사태가 아니었어도 LH의 과도한 기능을 나눌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택지를 개발해 번 돈으로 공공임대를 짓는 교차부조방식이 LH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였다"며 "이번 사태도 토지보상을 노린 직원들의 투기에서 시작된 것처럼 이 같은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과거로 회귀? 더 쪼개? 주택청 신설?…시나리오 난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더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조직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방법론을 두고 여러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LH 역할과 기능, 조직과 인력, 사업구조와 추진 등은 물론 청렴강화 및 윤리경영에 이르기까지 전 부분을 면밀히 점검해 강력하면서도 합리적인 혁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세부방안 마련 과정에서 부동산 안정을 위한 LH의 기존 주택공급대책 추진에는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유념하며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지만 당장 시급한 공급대책 추진에 차질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대안 마련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통합 이전처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나누거나 기능을 더 세분화해 분류하거나 아예 새롭게 주택청을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 등이 나온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LH를 해체, 국토부 아래에 주택청을 신설해 주거복지와 주택공급 등 주거 안정과 관련한 정책을 총괄하게 하고 LH는 주거복지 전달체계 업무를 담당하는 방안을 내놨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토지업무 담당 조직과 주택 건설‧분양‧임대 조직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신태수 지존 대표는 "LH가 공룡화 돼 통제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기 때문에 역할을 분리해야 한다"며 "과거처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전환하거나 기획과 실행업무를 나누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LH의 조직개편을 넘어 주택 공급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교수는 "LH의 조직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과거처럼 중앙정부 중심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체제 자체를 뒤엎어야 한다"며 "해당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가 실정에 맞게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 등 중앙 주도의 주택공급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지자체는 자체 개발이 가능한 재정 수준인 반면 지방은 재정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LH가 보완하도록 역할을 수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공공임대 등 주거복지와 관련된 부분은 유지하되 재정 적자가 우려되는 만큼 이 부분은 정부가 보조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은영 소장은 "단순히 LH를 분리‧해체한다고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택 공급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며 "공공택지를 조성해 일부 토지를 민간에 팔고, 여기서 생긴 이익을 공공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복지를 위한 주택공급에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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