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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대중 앞에 선 과학자 김상욱 “물리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쉽게 알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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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나를 훌륭한 과학자로 소개하면 안 됩니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은 ‘훌륭한 과학자’가 아닌 ‘잘 알려진 과학자’라고 했다. 각종 방송과 강연, 책 등으로 유명하지만 훌륭한 과학자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수십편의 SCI급 논문 실적이 있지만 이마저도 국내 ‘보통의 물리학자’ 수준이라며 웃었다. 이러한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과학자를 꿈꾸는 다음 세대를 위한 조언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잘 알려진 과학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에 자신만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김 교수는 ‘훌륭한 과학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그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물리학과 대중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지난 4월 9일 경기도 분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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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게재한 ‘찬물로 끓인 라면’에 관한 이야기가 소소한 화제가 됐다.

“사실 농담으로 쓴 것인데 재미있게 봐준 것 같다. 라면에 대해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말하는 것에서 흥미를 느낀 것이 아닐까 한다. 맛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쓴 글은 아니다.”

-이 사례가 물리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사실 라면을 찬물에 넣고 끓인다는 이야기 자체는 나에게도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다만 여기서부터 물리학자와 일반 사람들이 조금 다르다. 물리학자는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해본다. 이 부분을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이 세상을 남들과 조금 다르게 보는 경향도 있다. 일찍이 지구가 돈다고 주장한 사람들 아닌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면 좋아하고 이를 직접 확인해보려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우리 시대가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능력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시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중세에 태어났다면 물리학자들이 살아나 있었겠나. 기도하라고 하는데 물리학자들은 ‘신을 의심해보자’ 하는 사람들이다.”

-물리학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세상의 작동원리를 모두 설명하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확대해석하면 안 된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모든 학문이 다 세상을 설명한다. 물리는 물질의 이치, 즉 사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학문이다. 물리가 세상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세상이 물질로 돼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사물이 아닌 게 없으니까 모든 것이 연구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경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리가 주는 지식이 아니라 물리학의 연구 방법이다. 관측을 통해 얻어낸 데이터를 일반화해 이론을 만들고 다시 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하는 것이 물리학에서 만들어낸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다른 학문도 가져다 쓰면서 하나씩 과학으로 변모했다. 사회를 다루는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물리학이 사회에 기여한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과학적 방법론이다. 그 이전에는 세상을 이해하려면 경전을 봐야 했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나.

“사람의 감정, 예를 들어 사랑 같은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과학은 진리를 다루지 않는다. 태양이 오늘 동쪽에서 떴다고 내일도 동쪽에서 뜬다고 할 수 없다.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과학적 방법이고 태도다. 그럼에도 과학을 종교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의미나 가치, 도덕 같은 것을 물리학에서 찾으면 안 된다.”

-대중이 물리학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은 왜인가.

“물리가 말하는 것이 일상의 상식, 경험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일상에서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원자도 인간의 상식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물리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은 빨라야 17세기다.”

-학교에서 물리학을 수학으로 배우는 것도 문제 아닐까.

“인간의 상식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다 보니 언어보다는 수학을 사용하게 된다. 문제는 인간이 본래 논리적 동물이 아닌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수학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리는 원래 수학이 맞다. 전공 책을 봐도 다 수학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물리를 수학으로 가르쳐야 하는지는 확답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부분인데, 우리나라 교육은 학생들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집중돼 있는 것 같다. 개념을 전달하고 이를 테스트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의미다. 고등학생들이 모두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수학 대신 물리학적 소양만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일반인이 물리적 사고를 하려 해도 수학부터 배워야 하나.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독일 책을 보자고 모두가 독일어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수학 못 한다고 물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소한 주변 현상을 이해해 보고 싶은 정도라면 수학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위험은 있다. 양자역학 원리를 듣고 금방 우리 인생에 적용해 말하는 것이 문제다. 본래 우주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 언어는 수학이다. 이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면 오류가 생긴다.”

-방송이나 강연, 책 등을 통해 수학 없이 물리법칙을 전달하고 있지 않나.

“나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사실 제대로 이해하려면 실험하고, 수학적으로 계산해보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면 대부분 싫어하지 않나. 물리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어 고민하다 ‘좀 더 쉽고, 익숙하게’ 설명할 방법을 찾게 됐다. 일단 수학을 다 걷어내고 비유나 인문학적 표현을 첨가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온 유사한 개념도 많이 사용한다. 물리학자들끼리 대화하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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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문학을 좋아했나.

“추가로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이 세상을 다 물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중을 위한 글쓰기나 강연을 하면서부터 인문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에 대한 갈망도 좀 있었던 것 같다.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어릴 때부터 철학적 소양이 있었느냐 하는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만 하기에도 버거웠고 많은 시간을 과학에만 쏟았다. 오죽하면 인간을 이해하려면 생물학을 해야지 무슨 철학을 공부하냐고 했을 정도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사실 과학계에만 있으면 잘 모른다. 사회에 나오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신진 과학자들도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시간이 되면 하면 좋다. 내가 공부할 때는 과학이나 인문학의 융합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융합이나 통섭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 2000년대 초반이다. 나는 연구만 해도 충분한 시대를 살았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시대다. 이제는 내 연구가 어떤 사회적 영향을 주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연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어떤 기술을 넣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문학 공부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내 경험상 우선은 과학 공부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먼저 과학자가 되고 나서 융합을 하면 된다. 협업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기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융합할 순 없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힘든 점은 없나.

“어느 시점부터는 연구를 잘 못 한다. 그래서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과학자로 나를 뽑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그중에서도 집중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또 제한적이다. 어느 분야 연구든 모든 시간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계속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이 맞나. 내가 연구와 병행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과학자를 꿈꾸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 꼽히는데.

“내가 롤모델이면 안 된다. 나는 전형적인 과학자의 모습이 아니다. 과학계도 역할 분화가 고도화돼 있다. 어떤 과학자는 연구를 위한 돈을 따오고 어떤 과학자는 다른 과학자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과학에도 홍보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내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 말고 롤모델이 될 다른 훌륭한 과학자들은 많다.”

-대중에게 알려진 것도 어느 정도 과학적 성과가 있기 때문 아닌가.

“훌륭한 과학자로 유명해진 것이 아닌 언론에 자주 나오다 보니 유명해졌다. 이를 훌륭한 과학자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어릴 적 TV를 보면 몇몇 과학자들이 나오곤 했다. 나는 그 사람들이 굉장히 훌륭한 과학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예를 들어 스티븐 호킹은 위대한 과학자가 아닌 잘 알려진 과학자다. 오히려 위대한 인간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인문학적 위인과 과학적 위인을 혼동하면 안 된다. 인문학은 좋은 책을 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위대한 학자로 남는다. 인문학의 기본 소양에는 글 쓰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르다는 것인가.

“19세기 중반 이후 과학은 세분화·정교화됐다. 경험에 의한 실험이 끝나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조건으로 실험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이 결과는 논문으로만 나왔다. 결국 위대한 과학자들은 일반인을 위한 책보다 논문을 썼다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에 위대한 과학자들은 대중과 특별한 교류가 없었다. 오히려 괴리가 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보면 그만큼 자연의 핵심에 더 다가갔다는 것이다. 본래 자연의 핵심에는 인간적 사고나 특성이 없다. 이렇다 보니 이들 논문은 일반 사람들이 읽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렇다면 잘 알려진 과학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훌륭한 과학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일종의 번역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막 교수에 임용됐을 때 사회적 화두는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걸 해결해 보자는 차원에서 대중과 접촉을 시도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게 재밌었다. 과학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뒤에 덧붙여졌다.”

-과학 대중화와 올바른 사회는 어떤 관계가 있나.

“우리 시대 과학적 지식은 삶에 즉각 영향을 준다. 국가가 과학 연구에 세금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의사결정은 과학기술을 이해해야 가능한 것이다 보니 과학 대중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원전의 작동 원리를 모르는데 어떻게 원전과 관련한 의견을 낼 수 있겠나.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소수 전문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수동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정치에 대해서는 안 그러지 않나. 소수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권력을 쥔 사람들의 의견만 따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이용당한다. 왜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냥 그게 당연한 도리니까? 그렇지 않다. 그게 우리한테 왜 필요한지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하다못해 권력자들이 어젠다를 주지 않으면 우리는 따라갈 수 없다는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의 과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특별한 지식이 아닌 사고방식이다. 주장의 증거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적 사고방식이다. 적어도 물리 분야에서는 내가 사람들이 이 일을 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과학은 어떻게 발전하나.

“커뮤니티, 즉 과학자 집단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집단이 한다고 해서 어떤 일을 해낸 한 사람의 업적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뉴턴이 없었더라도 누군가는 이 일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혼자 할 수는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천재를 좋아하니까 한명의 천재가 다 만들어낸 것처럼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학문의 특성상 가만히 앉아 있다가 깨닫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에서 유로 가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흔히 아인슈타인이 기존 체계를 무너뜨렸다고 수사적 표현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기존 체계에서 한발짝 더 나아갔을 뿐이다. 과학의 발전을 이렇게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

글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사진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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