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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사람의 ‘외마디 비명’ 6가지…‘즐거운 감정’에 더 크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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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분노, 공포, 쾌감, 슬픔, 환희의 감정 담겨

부정적 감정만 있는 동물 세계의 비명과는 달라


한겨레

쾌감, 환희 등 강렬한 긍정적 감정을 느낄 때 지르는 비명 소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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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이라고 하면 놀라거나 두려울 때 지르는 외마디 소리를 연상하게 된다.

동물 세계에서 비명 소리는 집단내 갈등이 불거졌을 때, 자신이 다급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주변에 알리는 소통 수단이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1893년작 `절규'(The Scream)에는 고통과 불안 상황에 처한 인간의 절박한 심리 상태가 잘 묘사돼 있다. 뭉크는 자신의 일기에 "지치고 아픈 와중에 어느날 저녁 피요르드 해안을 걷던 중 해가 지면서 구름이 붉은 피빛으로 변하는 걸 보니, 자연을 뚫고 지나가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인간의 비명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당장 우리 주변만 돌아봐도 짜릿한 기쁨이나 행복감, 절망감을 느낄 때 비명을 지르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즐거운 비명이라고 부른다. 짧은 외마디 비명에도 매우 다양한 감정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인간의 비명 소리에는 어떤 감정들이 담겨 있을까? 우리는 어떤 비명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까?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진이 최근 공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비명은 고통, 분노, 공포, 쾌감, 슬픔, 환희에 해당하는 6가지 감정 유형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감정이 네 가지(고통, 분노, 공포, 슬픔), 긍정적 감정이 두 가지(쾌감, 환희)다. 또 부정적인 비명에 더 빨리 반응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우리 뇌는 긍정적인 비명에 더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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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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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가장 정확하게 가려내는 건 환희의 비명


연구진은 여러 비명 소리를 감정 범주별로 식별하기 위해 우선, 연구진 스스로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각 상황에서의 비명 소리를 내 녹음했다. 그리고 이를 기존 여러 조사 결과와 비교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비명을 유발하는 감정 유형은 6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이어 이를 확인하는 실험에 들어갔다. 실험은 네가지로 진행했다. 우선 12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해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유발하는 가상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비명 소리를 내도록 요청했다.

예컨대 어둡고 좁은 골목에서 낯선 사람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상대방을 위협할 때, 성적 쾌락을 느낄 때를 상상하도록 했다. 실제 상황이나 가상 상황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 상상만 하도록 한 것은 실험 참가자들의 심리적 불안 상태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처였다. 연구진은 또 비교를 위해 실험 참가자들에게 아무 감정도 개재되지 않은 비명 소리 `아'를 강하게 내지르도록 하고 이 소리도 함께 녹음했다.

그런 다음 녹음된 비명 소리들을 음의 높이, 세기 등 88가지 음향 특성별로 나눠 분석한 뒤, 컴퓨터 알고리즘에 각 비명 소리의 특징을 학습시켰다. 그 결과 컴퓨터는 각 비명 소리가 담고 있는 감정 범주를 약 80%의 정확도로 가려낼 수 있었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비명 소리를 통해 가장 정확하게 가려낸 감정은 환희(89.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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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세계의 비명은 주로 부정적인 상황에서의 다급한 소통 수단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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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환희 비명, 복잡해진 사회 환경이 유발한 ‘진화적 도약’


연구진은 다른 두 실험그룹에 이 비명 소리를 균일한 음향(70dB)으로 들려주고 평가하도록 맡겼다. 한 그룹엔 비명 소리에 담긴 감정 유형이 무엇인지를 3초 안에 평가하도록 했다. 다른 그룹엔 동시에 두 개의 비명 소리를 들려주면서 비명이 경고성(공포, 분노, 고통)인지, 비경고성(쾌감, 슬픔, 환희)인지 가려내도록 했다. 연구진은 또 다른 그룹엔 비명 소리를 들려주는 동안 실험 참가자들의 뇌 활동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로 촬영했다.

뇌 영상을 분석한 결과 뜻밖의 현상이 포착됐다.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고통, 분노, 공포, 슬픔 같은 경고성, 부정적 비명보다 쾌감, 환희 같은 비경고성, 긍정적 비명에 더 빨리 반응했다. 연구를 이끈 사샤 프뤼홀츠 교수는 "소리를 분석하는 청각 시스템과 감정적 반응에 관여하는 변연계,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전두엽 대뇌피질 이렇게 3가지 뇌 시스템의 활동이 경고성 비명보다 비경고성 비명을 들을 때 훨씬 더 활발했다"고 설명했다.

프뤼홀츠 교수는 "학계에서는 보통 영장류와 인간의 인지 시스템은 생존을 위해 위험 신호를 간파해내도록 특별히 조정된 것으로 본다"며 "우리 뇌가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 비명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확인한 이번 연구 결과는 놀랍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하지만 그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연구진은 인간 진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프뤼홀츠 교수는 "사람의 비명은 동물보다 훨씬 다양해서 사람만이 기쁨이나 환희 같은 긍정적 감정을 알리는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사회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사회적 소통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를 `진화적 도약'이라고 평가했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사회적 소통 필요성이 커지면서 다양한 비명 신호를 개발하게 됐다는 얘기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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