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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레이더P] 비정치인 대선주자 2011 안철수·2021 윤석열, 묘하게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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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해부터 이미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요즘은 30%를 훌쩍 웃도는, 1위 지지율을 기록 중이기도 하다. '윤석열 현상'이란 표현도 등장했다.

    비(非)정치인이 대선 반열에 올라 '태풍의 눈'이 되어 정치판을 휩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안철수 현상'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2011년의 안 대표와 2021년의 윤 전 총장을 비교했다.


    1. 정치권 밖 활동으로 명성


    안 대표와 윤 전 총장 모두 처음엔 정치와 무관한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안 대표는 의사 출신 경영인으로, 안랩(AhnLab) 창업자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안 대표는 대학원 박사과정 중 컴퓨터 바이러스를 처음 접했고, 이를 치료하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 후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개발자로 생활하며 무료로 백신 프로그램을 배포하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세웠다. 정계 진출 전까지 '청춘 콘서트'로 이름을 날렸고,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윤 전 총장은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와 관련된 BBK 사건 특검에 파견검사로 참여했고, 2013년 박근혜정부 땐 '국가정보원 댓글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팀장이 됐고, 탄핵 이후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으면서 이 전 대통령을 구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9년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2. 정계 진출, 태풍을 일으키다

    안 대표는 2011년 서울시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면서 정치판에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치자마자 안 대표는 5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1위에 등극했다.

    2011년 9월 3일 중앙일보의 의뢰로 실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 대표의 지지율은 49.5%였으며 당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21.2%,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10.6%를 기록했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자를 상당 부분 흡수하면서 '안철수 블랙홀'로도 불렸다. 안 대표의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와 기성 정치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중에게 통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정부와 갈등을 빚으며 대선 주자로 등극했다. 지난해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제기된 가족 비리 문제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전격 수사를 지시하며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섰다. 후임으로 임명된 추미애 전 장관과는 추·윤 갈등 구도를 형성하다 2개월 정직 처분을 받기도 했다. 추 전 장관 퇴임 후 임명된 박범계 장관과도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고 결국 지난 3월에 사의를 표명했다.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는 윤 전 총장의 작심 발언은 '윤석열 신드롬'을 일으키며 큰 호응을 얻었다. 문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우세한 가운데 '정권 압박에 굴하지 않고'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려는' 이미지가 윤 전 총장에게 구축됐다. 그리고 지지율 여론조사 1위에 올랐다.


    3. 입당과 창당의 갈림길

    최근 정치권에선 윤 전 총장의 거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망 중 하나는 제1야당인 국민의힘 입당, 다른 하나는 신당을 창당한다는 설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이) 지금 국민의힘에 들어가 흙탕물에서 같이 놀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창당을 예측했다. 반면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들어오지 않으면 대권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입당을 촉구했다.

    안 대표 또한 정치 신인 시절, 입당과 창당의 갈림길에 섰다. 그때 안 대표가 선택한 것은 창당이었다. 그는 현재까지 세 번의 창당과 한 번의 합당을 거쳤다. 첫 번째 창당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2013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그는 독자 정당인 새정치연합 창당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이후 민주당과 손잡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공동대표직을 맡았다.

    그러나 창당 직후 치러진 6회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 패배로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2016년에는 국민의당을 창당해 19대 대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3위로 낙선하고, 2018년에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세웠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며 중도 정당을 지향했지만, 당내 계파 분열로 2020년 탈당했다. 이후 국민의당을 창당해 현재까지 당 대표를 맡고 있다.


    4. 비정치인 한계 겪은 안철수, 윤석열은?

    10년 전 정치권에 등장한 안 대표는 그야말로 '태풍'이었다. 기성 정치에 변화를 시도하는 대안 정치의 선두 주자로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안철수 신드롬의 무기였던 '비정치인' 타이틀은 곧 한계로 다가와 안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세력은 부재했고 국정 운영과 행정 경험이 없는 것은 약점으로 작용했다.

    윤 전 총장 역시 대선 출마를 암시하며 정치인으로서 시작점에 섰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윤 전 총장을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라고 평했다. 현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난 '반짝 인물'이라는 뜻이다. 반면 김종인 전 위원장은 "별의 순간을 잡았다"며 대선 주자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윤 전 총장은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지난 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 선호도 부문 1위를 기록한 동시에 비호감 조사에서도 1위를 하기도 했다.

    [이석희 기자/이은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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