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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LH 임직원 투기 논란

혁신 없는 LH 혁신안, 밥그릇 싸움에 지역 반발까지 ‘점입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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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제기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사전 땅 투기 의혹으로 온 나라가 뒤흔들리고 정치권에선 해체에 준하는 혁신작업을 약속했지만, 정작 나온 LH 혁신안엔 핵심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마저도 정치권과 지역사회의 반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꺼내든 LH 혁신안은 LH 불법 투기 의혹으로 촉발된 조직 기강 해이를 바로잡을 만한 해법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31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고 LH 혁신안을 논의했다. 지난주 정부의 LH 혁신안에 대해 당정 간 엇박자가 나자 추가 조율에 나선 것이다. 다만 이 자리에서도 명쾌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견해를 공유한 정도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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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혁신도시 내 위치한 LH 본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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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27일 제시한 혁신안의 골자는 가칭 ‘주거복지공단’이라는 지주회사를 설치하고, 자회사 LH는 토지·주택·도시재생 등 주택 공급 핵심 기능만 남긴 후 나머지 기능을 분리·해체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LH가 독점했던 토지 개발 후보지 조사 기능을 국토교통부로, 토지·주택정보화사업 기능은 한국국토정보공사(LX)로 옮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과 시설물 성능인증·집단에너지·안전영향평가 등 비핵심기능은 즉시 폐지해 핵심기능을 제외한 조직과 인력을 20%가량 줄이겠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LH의 기능 분할에 초점을 맞춘 혁신안이 LH 사태를 일으킨 본질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LH 투기 논란은 기본적으로 조직 구조에서 초래된 문제가 아니라 임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이 핵심”이라면서 “LH의 혁신도 조직구조 개편이 아닌 ‘철저한 감시감독’과 ‘페널티 제도’ 도입으로 갔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특히 사전 땅 투기 의혹은 내부 고발에서 비롯됐는데, 이를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 가장 먼저 혁신돼야 할 행태”라고 덧붙였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LH 사태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의 문제”라면서 “그동안 공직자들의 준법·윤리 교육이 없거나 내실화되지 않았다는 방증인 만큼, 의식 교육부터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LH 혁신에 필요한 숙고와 여론 수렴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LH의 기능들에) 경쟁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기능 분할 여부가 아니라 개혁의 프로세스(process·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LH는 매출만 30조~40조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주택기업이라, 기능도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라며 “일반 기업의 실태조사도 6개월이 걸리는데, LH를 ‘지금 당장 뜯어고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다가는 더 개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여론부터 차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혁신안을 제출한 정부 역시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민주당에 제출한 LH 혁신안에는 ‘투기재발 방지 대책과 거리가 먼 기능 분할 방안에 대해서는 부정적 여론도 제기된다’는 의견이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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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상공회의소 회장단이 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정부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분할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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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핵심을 비껴간 혁신안마저도 안팎의 반발에 휩쓸려 험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LH와 지자체, 여당 모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광조 LH 노조위원장은 지난 27일 라디오에서 “LH 기능에 대한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LH는 부동산 정책을 대표적으로 수행하고 있고 서민들의 주거 안정과 국가의 균형 발전을 위해 설립됐는데, (기능 분할로) 이런 부분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LH 내부의 반발 기류를 보여준 것이다.

LH의 본사가 위치한 경남 진주시 일대의 반발도 만만찮다. 진주에서는 LH가 기능적으로 분리될 경우 LH에 크게 기대고 있는 진주혁신도시 역시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진주시는 이미 ‘LH 분리 반대’ 입장을 정부에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진주가 지역구인 국민의힘 박대출·강민국 의원도 “경남진주혁신도시가 서부 경남지역의 미래경제를 견인하는 중심 축으로 연착륙하는 상황에서 LH 분할은 찬물을 끼얹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주민들도 LH 기능 분할에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거는 등 행동에 나섰다. 진주 지역의 대학들도 지역인재전형을 통해 LH에 입사할 수 있는 통로가 줄어들까 우려해 연합공식성명을 냈다.

민주당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민주당 소속 국토교통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27일 정부로부터 혁신안을 비공개 보고를 받고 정부가 여당과 논의없이 혁신안을 만들어왔다며 불만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내부의 통일된 당론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위 여당 간사인 조웅천 의원은 보고가 끝난 뒤 “일단 정부안 설명을 듣는 데 집중하느라 의원들 간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고 결론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워낙 큰 조직에 칼을 대겠다는 일이라 진통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면서 “당장은 안팎의 반발에 처리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고,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한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유병훈 기자(itsyo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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