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도 안산동산고에 져…
대선공약은 단계적 전환이었는데
시행령으로 서두르다 혼란 키워
이로써 서울·경기·부산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처분에 불복한 전국 자사고 10곳이 1심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해당 교육청들은 항소한다고 밝혔고, 교육청의 취소 처분에 동의했던 교육부는 “판결문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날 입장 발표를 보류했다. 교육계에서는 “정부가 대선 공약이라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교육 정책들이 여러 부작용을 낳으며 학교·학생·학부모들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의적 평가 기준 소급 불공정”
이날 수원지법 행정4부(재판장 송승우)는 “경기도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취소는 처분 기준 사전 공표의 입법 취지에 반하고, 적법 절차 원칙에서 도출되는 공정한 심사 요청에도 반하여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며 원고인 안산동산고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 대상 기간이 2015년 3월부터 2019년 2월 말까지인데, 경기도교육청은 평가지표 배점을 바꾸고 지정 취소 기준점을 60점에서 70점으로 높인 평가 계획을 안산동산고에 2019년 1월 4일에서야 알렸다”며 “이런 변경 사항을 소급 적용해 평가한 것은 합리적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교육청이 지정취소한 자율형사립고 |
앞서 지난 2~5월 세화·배재·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경희·한대부고 등 서울의 8개 자사고도 같은 이유로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해운대고가 부산시교육감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교육 당국이 대선 공약인 자사고 폐지를 위해 평가 지표를 자사고에 불리하게 바꾸고 소급 적용한 ‘자사고 죽이기’가 제동이 걸린 셈이다.
◇무리한 교육 정책 밀어붙이기
자사고들은 1심 승소로 지위를 유지하게 됐지만 2025년 3월에는 모두 일반고로 전환된다. 당초 대선 공약은 5년 주기 재평가를 통한 단계적 폐지였는데,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으로 공정성이 화두가 되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자사고·외고 등의 지정 근거를 삭제해 2025년 일반고 일괄 전환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사고 존폐는 지난해 제기된 헌법소원 결과에 좌우될 전망이다. 교육계에서는 자사고·외고 유지가 내년 대선 공약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차기 정부가 시행령을 다시 바꾸면 자사고 등이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사학과 교원단체 등은 자사고 1심 판결 종결을 계기로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잇따라 내놓았다. 교육 당국이 자사고 폐지를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실현을 위해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 일선 교육 현장의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재작년 조국 전 장관 파문으로 대입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서울 주요 대학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는 등 갑작스러운 대입 개편을 내놓았고, 정부 출범 초기에는 수능 절대평가 공약을 교육부→국가교육회의→공론화위로 하도급, 재하도급을 거쳐 1년여 만에 철회했다. 또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공약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법안을 야당과 교원단체 반발에도 강행 처리했다. 이처럼 교육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사교육비 총액은 20조원을 넘어섰고,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13%대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사립초중고교법인협의회는 “자사고 판결은 조령모개(朝令暮改)식 교육정책과 반(反)교육적 횡포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학생·학부모가 더 이상 혼란을 겪지 않도록 정부가 일관성과 안정성을 갖춘 교육 정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국교총은 “억지로 공약을 밀어붙인 정권, 위법·불공정 평가한 교육청, 줄소송 사태를 초래한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자사고공동체연합은 “정부는 교육 농단을 책임져야 한다”며 “교육감 퇴진 운동을 포함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곽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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