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소리가 전보다 커졌거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자꾸 되묻는다면 난청을 의심해야 한다. 청력은 30대부터 감소해 60대는 3명 중 1명, 70대 이상은 3명 중 2명이 난청을 경험한다. 음파는 고막, 달팽이관, 뇌를 거쳐 소리로 변환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각 기관·신경이 모두 퇴화해 가는귀가 어두워진다. 고려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임기정 교수는 “난청은 진행성 질환으로 시간이 갈수록 악화한다”며 “다른 질환처럼 조기 진단·관리해야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60대 3명 중 1명은 난청
노화로 인한 난청은 단계별로 진행된다. 초기에는 고음과 ‘스·즈·츠·프·흐’ 같은 무성음이 들리지 않다가 이윽고 중·저음까지 안 들리게 돼 일상생활 전반에 어려움을 겪는다. 경고음을 놓쳐 교통사고·낙상을 당하거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으로 소외감·고립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임 교수는 “난청 환자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세상과의 단절”이라며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고, 주변과의 소통이 끊겨 우울·불안이 심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성인 1만679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난청은 우울증은 물론 자살 충동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플로스원, 2020).
고령사회의 불청객인 치매도 난청과 관련이 깊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존스홉킨스의대의 공동 연구(2011) 결과 정상 청력과 비교해 경도 난청 환자는 치매에 걸릴 확률이 1.89배, 중도·고도 난청은 각각 3배, 4.94배나 높았다. 임 교수는 “외부 자극이 줄면 뇌 활동량이 감소해 퇴화 속도가 한층 빨라진다”며 “난청 환자가 또래보다 기억력·계산력과 같은 인지 기능이 더 빨리 떨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난청을 해결하면 경도인지장애·치매 위험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란셋’에 실린 연구에서 난청은 예방 가능한 12가지 치매 위험인자 중 고혈압·비만·흡연·과음 등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치매를 막는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난청 치료라는 의미다.
노인성 난청은 약물·수술 대신 ‘보청기’로 치료한다. 청력 검사 결과에 맞춰 소리의 크기(출력)와 높낮이(주파수)를 조절해 잃어버린 청력을 보완해 주는 장비다. 일반적인 증폭기와 달리 개인별로 ‘맞춤 소리’를 설정할 수 있어 개선 효과가 크고, 추가적인 청력 손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임 교수는 “난청을 오래 방치하면 소리를 인지하는 뇌 영역이 퇴화해 보청기를 써도 말을 제대로 듣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며 “늦어도 중도 난청부터는 보청기 사용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2~3개월 정기검사 필요
하지만 보청기도 무턱대고 사용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가격·디자인이 다양한 데다 안경과 달리 정기적인 ‘맞춤 관리’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고려할 점이 많아서다.
보청기 만족도를 높이려면 첫째, 난청의 원인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귀지가 찼거나 고막에 구멍이 뚫렸을 때,뇌종양·메니에르병도 난청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청기 효과가 떨어질뿐더러 자칫 치료 시기를 놓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임 교수는 “특히 귀가 한쪽만 들리지 않거나 중·저음 청력이 약해진 경우에는 가급적 빨리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정밀 청력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둘째, 디자인별 장단점을 알아둬야 한다. 귀에 들어가는 귓속형(고막형) 보청기는 가볍고 소음의 영향을 덜 받지만 크기가 작은 만큼 출력이 약하고 사용시간이 짧은 편이다. 귀에 거는 귀걸이형(개방형)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조작이 쉽고 귀를 막지 않아 소리가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장점이 있다. 임 교수는 “대외 활동이 많고 사용시간이 짧을 땐 귓속형을, 섬세한 조작을 불편해하는 어르신에게는 귀걸이형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며 “청력 수준과 귀의 모양, 라이프스타일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택해야 보청기를 편안하게 오래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 적응 기간을 2~3개월 정도로 길게 잡아야 한다. 난청은 자기도 모르게 찾아와 서서히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떨어진 청력에 스스로 적응하다 보니 오히려 보청기 소리가 어색하고 심한 경우 두통·어지럼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임 교수는 “변화된 소리 자극에 뇌 신경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실내에서 야외로, 저출력에서 고출력으로 보청기 사용 장소·기능을 조절하고 사용 시간도 점진적으로 늘려가야 한다”며 “사용 초기에는 1~2주에 한 번씩, 3~4번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나 청각사 등 전문가에게 보청기 소리가 적합한지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사용 시 관리도 중요하다. 보청기는 습기에 취약해 수영·목욕·샤워할 때는 빼둬야 한다. 비를 맞거나 물에 빠뜨렸다면 전원을 끄고, 기기를 흔들어 내·외부의 물기를 뺀 뒤 그늘에서 충분히 말려야 한다. 자기 전에는 귀에서 빼 마른 헝겊으로 닦고 전용 습기 제거제에 보관해야 고장 없이 오래 쓸 수 있다.
보청기는 개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대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동일 모델도 판매점이나 유통 방식에 따라 비용이 다를 수 있어 사전에 꼼꼼히 비교해 보는 게 좋다. 중고도 난청 이상(청각장애)일 땐 건강보험이 적용돼 경제적인 부담을 덜 수 있다. 임 교수는 “보청기는 가급적 양쪽 모두 착용해야 소리의 방향·거리감이 상호 보완돼 소리가 더 잘 들리고 적응하기도 쉽다”며 “난청이 발생·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평소 대중교통 사용 시 이어폰 음량을 최대의 60%로 제한하는 등 소음을 멀리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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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보청기 오래, 편하게 쓰려면
-가급적 양쪽 모두 착용한다
-구매 전 시험 착용을 해본다
-구매 후 2~3개월은 적응 기간을 갖는다
-전문가에게 정기적으로 보청기 적합 검사(피팅)를 받는다
-샤워·목욕할 땐 빼고 잠을 잘 때는 습기 제거제에 넣어 보관한다
박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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