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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한국, 국방 스스로 책임져야” 레빈 전 美상원의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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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도

1980년대 ‘사형’ 선고된 DJ 구명운동 참여

바이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준 위인”

세계일보

1979년부터 2015년까지 36년간 미국 미시간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민주당)을 지낸 칼 레빈(1934∼2021).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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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6년간 미국 미시간주(州)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약한 미 정계 거물 칼 레빈 전 민주당 상원의원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오래 일한 고인은 한국 정부를 향해 ‘자주국방’을 요구하며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을 거론한 바 있다. 1990년대 북한을 방문해 영변 지역의 핵무기 관련 시설을 점검하기도 했다.

2일 미국 언론에 따르면 레빈 전 의원은 고향인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그는 올해 3월 자신이 폐암을 앓고 있음을 공개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거의 4개월 만에 타계한 것이다.

1934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명문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고인은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디트로이트 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지낸 뒤 연방 하원의원을 건너뛰고 곧장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1978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공화당 소속 현역 상원의원 로버트 그리핀을 꺾고 이듬해 상원에서 의정생활을 시작한 이래 총 6선을 달성했다. 1979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36년간 재직한 그는 미시간주 역대 상원의원 중 임기가 가장 길다. 2013년 3월 “더는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6번째 상원의원 임기가 끝난 2015년 1월 정계에서 은퇴했다.

고인은 상원의원 시절 군사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했다. 자연히 미국과 군사동맹국이자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도 오랜 기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과 고인의 인연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가운데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한국의 인권 상황을 우려한 고인은 그해 10월 미 상원에서 ‘DJ 사형 선고과 관련해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이 사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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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과 칼 레빈 전 민주당 상원의원이 함께 찍힌 사진. 2009년 촬영된 것으로 왼쪽부터 딕 체니 부통령, 레빈 상원의원, 바이든 대통령, 레빈 상원의원의 친형인 샌더 레빈 하원의원.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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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고인은 한국 정부에 자주국방 태세를 갖출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를 위해 노태우정부 시절인 1989년 6월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안을 제의했다. 당시 4만3000명에 이르던 미군을 거의 25%인 1만명 수준으로 감축하자는 파격적 주장을 펼쳤다.

고인은 김영삼(YS)정부 시절인 1994년과 1998년 북한을 방문한 경험도 있다. 1994년 당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간 제네바 접촉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1998년 방북은 제네바 핵합의 파결 이후 북한의 합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영변 핵시설도 직접 찾아가 살펴봤다.

그 뒤로도 고인은 2015년 정계은퇴를 할 때까지 한국의 안보 상황과 관련해 꾸준히 묵직한 목소리를 냈다. 2012년에는 당시만 해도 엄격한 사거리 제한에 묶여 있던 한국군의 탄도미사일과 관련해 “방어 목적에 한해 사거리 연장에 찬성한다”고 한국을 두둔하는 입장에 섰다. 2013년에는 “한국은 주권 국가이고 주권 국가는 스스로 자국의 방위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며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고인과 마찬가지로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냈고 같은 민주당 소속으로 고인이 상원 군사위를 이끌 때 외교위원장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정중한 추모 성명을 내놓았다. 고인을 ‘디트로이트의 아들’이라고 부른 바이든 대통령은 “레빈 전 의원은 미시간주 역사상 가장 오래 재직했던 상원의원 36년 동안 민주주의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며 “특히 상원 군사위원장으로서 국가안보를 지키고, 제복을 입은 모든 애국자들의 봉사를 기리기 위해 공감대를 형성해냈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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