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수감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가석방이 결정 나자 삼성전자 주주들은 내심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해 삼성이 총수 공백을 해소하면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당장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이 걸려 있고 투자와 M&A 발표가 난 것도 아니라 주가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10일 오전 9시 10분 기준 전 거래일 대비 400원(0.49%) 내린 8만1100원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주들은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으로 인해 삼성전자 주가가 오를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기대하고 있다. ‘총수 부재’ 리스크(위험)가 해소되면서 이 부회장이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미국 등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투자도 속도가 날 것으로 점치고 있다.

2018년 2월 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는 이 부회장.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삼성전자 주식을 들고 있는 직장인 박모(38)씨는 “요즘 주가는 M&A 또는 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했을 때 오르지 않느냐”며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만큼, 삼성전자 차원에서 미뤄뒀던 M&A나 투자 결정을 신속하게 해 주가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 오전에 삼성전자 몇 주를 더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주주들은 “이 부회장 가석방은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한 삼성전자 주주는 “7만원대 후반에서 8만원대 후반까지 지지부진했던 삼성전자 주가가, 지난 1월 ‘9만전자’를 노렸을 때처럼 올랐으면 좋겠다”라며 “총수 부재 리스크가 곧 해결되니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성장 모멘텀(동력)을 확보하면 연초처럼 ‘9만전자’ ‘10만전자’까지 노릴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실제 7만원대 후반에서 지지부진하던 주가는 이달 들어 약 4% 오르며 ‘8만전자’를 회복했다.

삼성전자뿐아니라 삼성그룹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그룹 전반적으로 총수의 경영권 공백에 따른 컨트롤 타워 부재와 M&A 및 대규모 투자 등의 의사 결정 지연의 불확실성 해소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이 삼성전자 주가에 큰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떨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구속됐을 때도 주가가 크게 출렁거리지 않은 만큼, 정교한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대기업의 주가가 총수 가석방 하나로 급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가가 상승하려면 당장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미국 팹리스(공장 없이 반도체 설계만 담당하는 기업) 고객사가 추가로 확보되거나 굵직한 M&A 추진 발표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삼성전자 주주는 “모두가 아는 호재는 호재가 아니지 않느냐”라며 “삼성전자가 의미 있는 투자건이나 M&A 추진 발표를 하기 전에는 주가가 의미 있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다른 주주도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르기도 했고 오히려 선반영된 기대감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가석방돼도 5년 동안 취업제한이 적용될 전망이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이 제한된 상태여서 경영에 복귀하기 위해선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 이 부회장에게 걸려있는 수사·재판 2건이 더 있는 점도 우려로 작용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고,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도 기소된 상태다.

‘단타’에 나서겠다는 개인 투자자도 보인다. 오전에 삼성전자가 상승하다가 오후에 외국인과 기관을 중심으로 차익실현 매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 장 초반에 사서 장 끝나기 전에 팔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달 들어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는 삼성전자를 각각 8480억원, 6679억원 순매수하며 이 부회장의 가석방 효과를 긍정적으로 분석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늘 ‘천하제일 단타대회’가 열릴 수도 있다”며 “모두 1분 1초 차트에 두 눈을 고정해야 한다”는 글이 보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수감된 지 207일 만인 오는 13일 가석방된다. 지난 9일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는 9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8·15 가석방 대상자 심사 회의를 열어 가석방 신청자 총 1057명 중 이 부회장을 비롯한 810명에 대해 ‘가석방 적격’ 의결을 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정농단 공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은 지난 1월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확정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다비 기자(dabee@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