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아프간 군경들 인용해 보도…경찰간부 "150달러 제안받은 적 있다"
아프간 정부군 속절없이 무너진 배경엔 탈레반의 물밑 '밀거래 공작'
지난 3일 아프가니스탄 헤라트지방에서 탈레반과 교전하는 정부군 병사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사실상의 승리를 선언한 탈레반이 작년 초부터 정부 관리들과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 투항을 유도하는 일종의 '밀거래' 작전을 확대해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아프간 군대의 몰락: 은밀한 거래들과 집단 탈주'라는 기사에서 아프간 정부군 병사들이 제대로 교전도 하지 않고 속속 탈레반에게 투항하거나 달아난 것에는 탈레반의 치밀한 물밑 거래가 있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아프간 군대가 탈레반의 진격에 속수무책으로 몰락한 것은 탈레반이 작년 초부터 농촌 마을 아프간 정부의 하급 관리들과 시작한 일련의 거래로부터 시작됐다.
아프간과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탈레반은 작년 초 한 지방 농촌 마을에서 정부군에게 '무기를 넘겨받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아프간 관리들은 이를 휴전이라고 강변하지만 사실상 투항과 맞바꾼 거래였다고 한다.
최전선에서 탈레반과 교전하는 아프간 경찰관들은 6~9개월간 급여를 받지 못하는 등 악조건에서 싸우다가 탈레반의 거듭된 제안에 투항하는 일이 속출했다.
최근까지 1년 반 동안 이런 거래를 위한 협상은 소규모 마을에서 시작돼 점점 커져 주도(州都) 차원의 논의로까지 확대됐고, 결국 정부군의 항복으로 귀결됐다고 10여명의 아프간 장교와 경찰관들이 WP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탈레반은 작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탈레반의 아프간 주둔 미군의 완전 철수에 합의한 뒤 생긴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파고든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아프간 헤라트지방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탈레반 조직원 [EPA=연합뉴스] |
철군 합의 이후 아프간 군경 사이에서는 더 이상 미국의 압도적인 공군력과 군수지원에 의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퍼졌고, 아프간 정부에 만연한 부패와 탈레반에 대한 두려움, 전망 부재 등이 겹쳐지면서 탈레반이 제안한 거래를 수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철군 시작 이후 탈레반에 점령된 최초의 주요 도시인 쿤두즈는 부족 장로들이 중재한 협상 끝에 정부군의 마지막 기지를 탈레반에게 넘기는 항복 거래가 이뤄졌다고 한다.
얼마 뒤 서부 헤라트 지방에서 열린 협상에선 거래가 하룻밤 사이에 성사돼 주지사, 내무부 고위 인사, 정보당국자, 수백 명의 군인이 탈레반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직을 사퇴했다고 WP는 전했다.
아프간 특수부대의 한 장교는 "일부는 단지 돈을 원했다"면서도 "다른 이들은 미국의 철군 약속을 탈레반의 집권 보증으로 보고, 승리자(탈레반) 쪽에서 자리를 보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장교는 또 정부 편에 섰던 사람들은 도하 합의를 '종말'로 받아들였다면서 "합의가 있던 날 모든 사람이 각자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이 우리를 실패하게 방치한 것과 같다"고 비난했다.
'바챠'라는 이름의 34세 경찰 간부는 이런 상황들을 전하며 "지난번 탈레반은 투항과 탈레반 합류를 조건으로 150달러(17만원)를 제안했다. 지금 가격은 얼마나 되는지 아나?"라고 반문했다고 WP는 전했다.
yonglae@yna.co.kr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조직원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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