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떠난 자리를 탈레반이 차지하면서 새로운 아프간이 어떤 모습일지, 중앙아시아의 정치·안보 지형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또 중국·러시아·인도 등 주변 열강들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전쟁의 참화를 겪은 이 지역이 이제는 조속히 평화와 안정을 찾아 무고한 주민들이 고통받는 일이 더는 없길 바란다.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아프간 주민들의 인권이다. 탈레반이 집권했던 1996~2001년의 5년간은 한마디로 '인권 암흑시대'였다.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은 당시 여성의 교육과 사회 활동은 물론 외출까지 금지할 정도로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엄격하게 적용했는데 여성에 대한 처벌이 유난히 가혹했다. 국제사회의 통상적 인권 기준과 동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도 비판이 쏟아질 만큼 비인도적이었다. 국제사회의 호소와 압력에도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무참하게 폭파해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내전 중이던 2007년에는 현지에서 봉사·선교 활동을 하던 한국인 21명을 납치해 이 가운데 두 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극악무도한 일까지 저질렀다. 그들의 신념과 주장이 워낙 고집스럽고 폐쇄적이라는 점, 20년 내전 기간에도 반인권적 태도가 여전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재집권 후 퇴행적이고 반문명적 행태를 반복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듯 최근 여성도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혼자 외출하는 것도 허용하는 등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진정한 시험은 지금부터라면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하지만 탈레반의 인권 유린 사례는 최근까지도 속속 보고됐다. 여성들을 탈레반 대원들과 강제 결혼시켰다거나 여성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총격을 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탈레반 스스로 이런 행위가 이슬람의 원칙과 전통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19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학생 중심으로 결성된 탈레반이 이번만큼은 진정으로 보편적 인권을 준수하는 정상 국가를 추구하길 촉구한다. 국제사회도 아프간의 정권 교체 후 인권 암흑기가 다시 도래하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우리 정부 역시 사태 진전을 면밀히 주시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다른 서방 국가들처럼 아프간 주재 대사관을 잠정 폐쇄하고 공관원들을 인근 국가로 철수시키고 있다고 한다. 공관 직원들과 재외국민의 안전에 온 힘을 쏟는 한편 한국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현지인들의 안전 대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주기를 당부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