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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관련 국가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파키스탄 등이 제 각기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지만, 동시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자국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접경 국가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있고, 유럽 국가들은 대규모 난민 유입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아프간 철군을 결정한 이후 무책임한 결정으로 주변 국가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아프간 상황을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의 공백이 자국의 영향력 확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이슬람교도가 많은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정치적 안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탈레반의 세력 확장이 신장위구르 자치구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ETIM)’의 중국 내 테러활동 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중국이 아프간 사태에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워 일단 사태를 관망해왔다. 중국은 대신 탈레반과의 접촉을 통해 자국에 미칠 악영향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톈진(天津)에서 탈레반 대표단을 만나 “탈레반이 ETIM 등 모든 테러단체와 선을 긋고 지역의 안전과 발전 협력을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탈레반 측도 “어떤 세력도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면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 의사 등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중국은 탈레반의 정권 장악 이후에도 협력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 등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아프간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는데 우리는 아프간 인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탈레반 측은 중국과 좋은 관계 발전을 원한다는 뜻을 표시했다”면서 “우리는 이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을 아프간 인민의 선택으로 보고 이를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관영 환구시보는 16일 사설에서 “중국은 미국이 아프간을 떠난 뒤 남긴 ‘진공’을 메울 뜻이 없고,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며 “아프간의 조속한 평화 정착과 재건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타임스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즉각 국가를 통제하고 안정을 가져온다면 이는 나쁜 소식이 아닐 것”이라며 중국은 아프간의 전후 재건에 참여해 미래 발전을 돕기 위한 투자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상황이 안정되면 중국이 아프간에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아프간의 현 상황을 위기이자 기회로 보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도 아프간 상황에 민감한 나라 중 하나다. 러시아는 아프간 정세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혼란으로 이어져 자국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왔다.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러시아 연방 내 체첸 자치공화국과 연계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함께 아프간 국경 인근에서 연합 군사훈련을 전개하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탈레반의 도발에 대비해야 하며 이는 러시아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 국경 경비를 강화하며 상황 변화를 주시하고 있는 상태다.
아프간 접경 국가인 파키스탄은 셈법이 조금 다르지만 역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유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파키스탄은 자국과 아프간에 걸쳐 사는 파슈툰족을 세력 기반으로 하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아프간의 혼란으로 난민이 몰려들거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유입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주변국인 이란은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이 탈레반과 연계돼 시아파 정부를 위협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인도는 앙숙인 파키스탄과 가까운 탈레반 정권이 반인도 노선을 걷는 것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난민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2015년 시리아 전쟁으로 유럽으로 난민이 대거 유입된 것과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시리아 난민 360만명을 수용하고 있는 터키는 최근 “이란을 통한 아프간 이민자들의 물결에 직면했다”며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알렉산더 샬렌버그 오스트리아 외무장관도 “아프간의 불안정이 조만간 오스트리아와 유럽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프간의 혼란은 파키스탄과 이란이 난민 물결에 가장 취약한 국가가 되겠지만 유럽으로까지 난민을 몰고 갈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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