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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얼굴 보였다고 엄마 무차별 폭행” 탈레반 돌아오자 여성들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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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탈레반의 여성 억압을 상징하는 부르카. 하늘색이나 녹색 천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리게 하는 부르카는 탈레반 정권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여인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 반드시 입어야 했던 옷이다.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한 여성은 종교경찰에게 매를 맞기까지 했다. /조선DB


수니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한 다음 날인 16일(현지시각) 오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문이 열리자마자 인파가 몰려들었다. 어떻게든 아프간을 떠나려는 이들의 절박한 모습이었다.

외신들은 아프간 시민이 지난 1996~2001년 탈레반 집권기의 잔혹하고 억압적인 공포정치가 재현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여성에게 유난히 가혹한 이슬람 율법을 적용해 이 시기는 ‘인권 암흑시대’로 기억된다.

탈레반은 당시 12살 이상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여성 혼자 거리를 다니는 것조차 막았다. 당연히 직장을 가질 수도 없었다. 공공장소에서는 온몸을 가리고, 눈조차 망사로 가리는 옷인 ‘부르카’를 입어야 했다. 얼굴이 드러나는 히잡보다 더 보수적인 복장이다. 또 남성이 특정 여성을 ‘간통했다’고 지목하기만 하면 돌로 때려죽이는 사형제도까지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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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를 입은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포르투갈어로 ‘탈레반 이전(antes do Taleban)’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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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와 인터뷰를 한 학교 교사 출신의 여성은 “남자 없이는 외출할 수 없었고 심지어 시장에 갈 수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어떻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여성은 “노출 있는 샌들을 신었다는 이유만으로 매를 맞았었다”고 했다. 여성 인권 운동가인 자르미나 카카르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던 어머니가 얼굴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매를 맞는 모습을 어릴 때 봤다”며 “탈레반이 집권하면 암흑의 시대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우려했다.

탈레반은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최근 여성도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혼자 외출하는 것도 허용하는 등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탈레반 대변인 수하일 샤힌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히잡을 쓴다면 여성도 교육을 받고 직장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인권 유린 사례는 최근까지도 보고됐다. 유엔아프간지원단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올해 1분기 여성 사상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고, 아동 사망자 수는 23% 증가했다. 미군의 철수가 예고되면서 탈레반의 통제력이 커지던 시기에 폭력 사태가 증가한 것이다. 여성들을 탈레반 대원들과 강제 결혼시켰다거나 여성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총격을 가했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로야 라흐마니 전 주미 아프간 대사는 CNN에 출연해 “제가 탈레반에 대해 아는 것과 그들의 행동에 비추어볼 때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희생될 것 같다”며 “여성의 교육, 취업, 공공부문에 대한 여성의 접근이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레반이 여성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동등한 시민권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며 “탈레반 정권하에서 여성은 특정 역할에만 적합한 하층 계급으로 취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라흐마니 전 대사는 2018년부터 지난달까지 주미 아프간 대사를 지냈다. 1978년 카불에서 태어난 그는 파키스탄으로 도주해 난민으로 자랐으며 캐나다와 미국에서 대학 및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아프간의 첫 여성 대사로 부임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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