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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승차거부…“너희들 거리에 나온 마지막 날” 조롱
2008년 아프가니스탄의 한 학교에서 공부 중인 여학생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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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아침,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별안간 여학생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탈레반이 카불에 도착했요. 부르카(머리에서 발목까지 덮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복식)를 입지 않으면 때릴 거라고 경찰이 우리한테 대피하라고 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학생들은 서둘러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버스나 택시는 탈 수 없었다. 기사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태우려고 하지 않아서다. 카불 외곽에 사는 학생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거리에선 한 무리의 남성들이 여학생들을 조롱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얼른 부르카를 입어라”라고 외치자 또 다른 “오늘은 너희가 거리에 나오는 마지막 날이야”라고 비웃었다. “난 곧 너희 네 명과 한 번에 결혼해야겠다”는 소리도 들렸다. 저 추악한 남성들은 탈레반 편에 서서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르며 여성들을 혐오하고 조롱하겠지. 너무 끔찍하다.
지난 7월8일 탈레반과 아프간 군 충돌로 피난 중인 아프간 소녀.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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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 찾던 뷰티살롱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예쁜 소녀들의 사진과 그림으로 가득했던 건물은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이곳에서 손톱 손질을 받고 매니큐어를 칠하던 지난날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겠지.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크게 웃는 일도 더는 할 수 없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 드레스, 분홍색 립스틱과도 작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바로 눈앞에 있는 대학 졸업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이 너무 기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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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인증서부터 숨겼다…“탈레반의 노예 될 것” 눈물
나는 11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아프간 최고 명문대에서 복수 전공으로 학위를 거의 마쳤다. 이중학위 과정을 밟아 미국의 대학에서도 학위를 받을 예정이었다. 학비 마련을 위해 카펫을 짜면서 공부해야 했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렇게 버티면서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지난 5월 카불의 한 여학교를 겨냥한 폭탄 테러 희생자들의 책상에 조화가 놓여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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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청사가 문을 닫은 그 날, 그곳에서 4년간 근무한 언니도 수 킬로미터를 달려 집으로 왔다. 언니는 “컴퓨터를 끄고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울면서 사무실을 나왔다”며 “내가 직업을 가진 마지막 날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집에 오자마자 언니와 동생과 함께 신분증과 졸업장, 인증서를 숨겼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을 왜 숨겨야 하는지, 절망적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학생증이나 상을 받는 건 위험하다. 받더라도 활용할 일도 없다. 아프간엔 우리를 위한 일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에게 탈레반 시대에 여성이 얼마나 억압받았는지 말해주곤 했다. 불과 몇 달 전에도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탈레반이 장악한 지방에서 도망쳐 나온 주민들을 도울 때 들은 이야기다. 노숙 중인 이들 중 한 명은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카불로 떠나올 때 택시비가 없어 며느리를 대신 기사에게 넘겼다고 한다. 한 여성의 가치가 교통비 몇 푼어치라니. 내가 가르치던 영어 센터의 어린 소녀들이 더는 배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이제 내 처지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겠지. 탈레반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오늘, 나는 탈레반의 노예가 될 것을 직감한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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