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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29세 아프간 최연소 여성 시장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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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탈레반 퇴각 후 교육 기회 누린 ‘아프간 신세대 여성들의 롤모델’

지난해엔 美 국무장관 선정 ‘세계 용기 있는 여성상’ 받기도

조선일보

지난달 21일 자리파 가파리(흰색 히잡을 두른 여성)가 부상을 입은 군인의 병실에 방문했을 당시 모습/자리파 가파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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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 카불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날 ‘아프간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불리는 최연소 여성 시장 자리파 가파리(29)가 이런 말을 남긴 채 연락이 끊겼다고 영국 일간 i뉴스가 1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i뉴스 보도에 따르면 수도 카불에서 서쪽으로 약 46km 떨어진 마이단샤르시(市) 시장인 가파리는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한 날, i뉴스와 채팅 앱으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는 그들(탈레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나 내 가족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그들은 나 같은 사람을 찾아서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가족을 떠날 수 없다. 내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후 가파리 소식은 끊겼다. 그는 15일 소셜미디어에 남긴 마지막 게시물에 카불 시내를 내려다보는 사진과 함께 “사랑하는 내 조국, 네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며 “내 꿈은 사랑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진보적인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썼다.

가파리는 지난 2001년 미군의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이 퇴각한 뒤 교육 기회를 누린 젊은 아프간 여성 세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아프간 팍티아주(州)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도 펀자브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014년 아프간 여성들을 위한 비영리 시민 단체(NGO)를 설립해 여성 인권 운동을 했다. 2018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그를 인구 3만5000명의 마이단샤르 시장에 임명, 아프간 역사상 최연소 여성 시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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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파 가파리 페이스북


그는 국제사회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다. 2019년 영국 BBC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뽑혔고, 작년 미국 국무장관이 수여하는 ‘세계 용기 있는 여성상’을 받았다. i뉴스는 “가파리는 탈레반이 싫어하는 전형적 인물”이라며 “똑똑하고 거침없으며,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말했다.

가파리는 시장 취임 이후 여성을 멸시하는 아프간 문화에 맞서 싸웠다. 시장 취임 직후부터 사퇴를 요구하는 남성들의 괴롭힘에 시달렸고, 탈레반의 지속적 살해 위협을 받았다. 임기 첫날 성난 남성들이 돌과 장대를 들고 집무실로 몰려와 취임이 미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파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2019년 그는 안전 문제로 도시에 머무를 수 없게 되자, 카불에서 통근하면서 시정을 돌봤다고 당시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가파리는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군 완전 철수를 발표한 뒤, 아예 거처를 카불로 옮기고 국방부에서 테러와 전투로 부상한 군인과 민간인을 돕는 일을 했다. 탈레반이 빠른 속도로 아프간 주요 도시를 점령하는 와중에도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i뉴스와 처음 한 인터뷰에서 “아프간의 젊은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고, 소통할 수 있다”며 “나는 그들이 사회 진보와 우리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의 미래가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i뉴스 인터뷰 이후 연락이 닿지 않던 가파리는 17일(현지 시각) 비공개 상태였던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다시 공개로 돌려놓았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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