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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미국 도왔던 동료 구출하라” 아프간 ‘디지털 됭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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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일 스페인 군용기를 타고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아프간인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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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직후인 지난 16일(현지시각), 미 육군 예비역 대령 마이크 제이슨(48)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과거 이탈리아 국방연구소에서 함께 일한 아프간 고위급 장교였다. “탈레반에 쫓겨 가족과 함께 수도 카불에 숨어 있으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까지 이동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였다.

제이슨은 곧바로 구출 작전팀을 꾸렸다. 퇴역 동료 수십 명과 함께 탈레반을 피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탐색했다. 주로 소셜미디어(SNS)에서 정보를 모았고, 지도에 이동 경로를 표시해 메시지로 전달했다. 아프간 장교는 제이슨이 보낸 정보를 토대로 이동했고, 지난 18일 “공항에 무사히 도착해 가족과 함께 수송기 탑승을 기다린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미 퇴역 군인 네트워크의 아프간 동료 구출 작전 ‘디지털 됭케르크’는 이렇게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침공으로 프랑스 됭케르크(Dunkirk) 해안에 고립된 병력 40여 만명을 탈출시키기 위한 연합군 철수작전 ‘됭케르크’가 아프간에서 재현됐다.

22일 폭스뉴스는 통역사 등 미국을 도왔던 아프간인 구출 운동이 ‘디지털 됭케르크’ 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참여자는 SNS에서 정보를 모으고 위성사진을 분석해 통역사에게 제공한다. 당초 퇴역군인 수십 명으로 시작한 이 활동에 위성사진 분석가, 목사, 가정주부, 학생 등 수십 만명이 동참했다.

전 CIA 분석가이자 아프간 참전용사인 맷 젤러도 과거 자신을 도왔던 아프간 통역사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디지털 됭케르크’에 참여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그들은 미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탈레반의 표적이 된 집단”이라며 “전직 미군으로서 이들을 탈출시킬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젤러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 내 통역사와 그 가족은 최소 2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탈레반은 서방에 협력한 아프간인을 용서한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했지만, 이미 이들을 색출하고 있다는 게 젤러 설명이다. 자원봉사단체 ‘노 원 레프트 비하인드’에 따르면 지금까지 300명 넘는 통역사와 그 가족이 탈레반에 살해당했다.

젤러는 주로 한밤중에 실시간으로 통역사에게 이동 경로를 안내한다.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다 보니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이미 30여 명을 탈출시킨 ‘뉴욕 디지털 됭케르크’ 소속 젠 윌슨(35)도 “현지 정보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게 가장 큰 난관”이라며 “새로운 정보가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숨 걸고 공항에 도착해도 끝난 게 아니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공항에서 10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탈레반이 무작위로 발포하는 상황이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통역사 가족 일부는 미국 시민권이 없어 공항에서 생이별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 최악의 조건”이라고 젤러는 부연했다.

젤러는 “통역사는 (미군의) 눈과 귀가 돼 준 사람들”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 이들의 구출을 촉구했다. 그는 “통역 이전에 문화적 맥락에서 전투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도와준 미군의 필수 인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이들을 대피시키지 않으면 탈레반에 목숨을 잃을 것이고, 우리는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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