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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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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올수록 더 달곰해지는…노오란 햇배의 유혹 [지극히 味적인 시장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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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안강시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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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대, 연근, 우엉, 도라지, 더덕 등 가을을 알리는 작물이 시장에 등장했다. 9월이면 신화, 원황, 황금배도 나온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햇배는 더 달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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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었다. 여전히 낮은 덥지만, 그래도 계절은 가을이다. 경주로 떠났다. 경주 가는 길에 군침이 돌았다. 경주의 다양한 먹거리에? 아니다. 달콤한 햇배가 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경주, 울산, 포항 등 경북에서는 추석 전에 다양한 종류의 배가 나온다. 우리는 명절이면 배를 산다. 보통은 신고배. 가장 많이 찾는 품종이다. 껍질 두껍고, 서걱거리는 석세포에 적당한 단맛이 있다. 크기가 크고 껍질이 단단해 보관하기 좋다. 반면에 껍질을 까야 먹을 수 있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9월이면 신화, 원황, 황금배가 시장에 나온다. 늦여름과 가을 사이에 나오는 배는 신고와 전혀 다른 맛과 향이 있다. 일단은 껍질이 얇다. 과일은 껍질에 모든 향이 있다. 과육은 단맛밖에 없다. 과육은 껍질과 같이 먹을 때 비로소 자신을 드러낸다. 또 한 가지, 초가을에 나는 배의 특성은 과즙이 많다. 신고 또한 적지 않지만, 초가을 배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초가을 배는 껍질이 얇아 향 즐기기에 좋다. 대신 얇은 껍질과 풍부한 과즙 덕에 단단했던 과육이 빠르게 무르기 시작한다. 초가을에 먹어야 할 것으로 전어보다는 배다. 맛으로 따지자면 전어는 늦가을이다.

초가을 배는 신고배보다 껍질이 얇아 향을 즐기기에 더 좋아

경주 안강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배부터 찾았다.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파는 이와 사는 이가 차고 넘쳤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일장 규모가 컸다. 출발하기 전, 경주 오일장 날짜를 보려고 검색했다. 제일 먼저 안강시장이 떴다. 29일이 장날, 다른 일정이 없는 날이기에 출장 일정을 잡았다.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니 경주 시내가 아닌 조금 떨어진 읍장이었다. 7~8월 사이 제대로 된 시장 구경을 못했다. 더위에 녹아내린 시장 분위기에 취재할 맛도 안 났다. 일정을 바꿀까 하다가 그냥 진행했다. 왜 검색했을 때 안강시장이 제일 처음 나왔는지 읍내 입구에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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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장인 경주 안강시장은 영천, 포항, 경주에서 모이는 인파로 이른 아침부터 흥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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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조금 넘어 안강 시내 근처에 도착했지만, 차가 밀렸다. 시장은 벌써 흥이 넘쳤다. 생각 이상으로 규모가 컸거니와 파는 이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장사가 된다는 방증이다. 상설 시장 앞으로 장이 펼쳐져 있고 좁은 골목과 큰 대로 사이에 장이 섰다. 아마도 안강의 위치가 삼각점의 중심으로 영천, 포항, 경주에서 접근성이 좋아 그런 듯싶었다.

여름을 보내는 가을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있었다. 가을을 알리는 작물이 지난 함양장보다 더 많이 나와 있었다. 기다란 토란대를 자르는 손길이 분주하고, 저기에서는 연근이 어서 팔리기를 기다렸다. 그 옆은 우엉이 가만히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닥은 이미 도라지와 더덕 차지였다. 가을에 맛이 빛나는 것들이다. 토란대는 껍질 까서는 살짝 데친다. 그렇게 데쳐 나물로도 먹지만, 말려서 묵나물로 해놓으면 든든하다. 시장 구경 다니다가 배를 발견. 보니 신고배다. 신고는 시월이 넘어야 제 맛이 든다. 이 시기의 신고는 무늬만 ‘배’다. 한 바퀴를 거의 다 돌 무렵, 영덕에서 생산한 배를 가지고 온 이가 장사판을 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원황.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는 이따 오겠다 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가니 배는 없었다. 그 사이 다 팔렸다. 몇 박스 있기에 안심했고, 방심했다. 골목 안에서 다른 원황을 겨우 살 수 있었다. 추석이 다가올수록 햇배 맛이 더 달곰해진다. 제대로 익은 홍로를 비롯해 햇사과가 유혹했지만, 달곰한 과즙으로 꽉 찬 배를 이기지 못했다.

풍성한 나물에 된장찌개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 맛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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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을 그득 채운 여러 가지 나물에 된장찌개 넣어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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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경을 끝내고 밥을 먹으러 갔다. 경주는 보리의 고장. 보리빵이 있어서 보리의 고장이라 예상하지만, 아니다. 보리의 고장이라서 보리빵이 탄생했다. 경주 건천읍이 이름난 보리 생산지라서 좋은 찰보리가 많이 나온다. 예전에는 보리쌀은 미리 삶아서 밥을 해야 했다. 최근에 나오는 찰보리는 쌀과 같이 밥을 해도 될 정도로 찰기가 있다. 찰보리는 품종에 따라서 아밀로스 함량이 2~10%다. 참고로 찹쌀의 아밀로스 함량은 0%에 가깝다. 이런 까닭에 예전처럼 입안에서 통통 튀던 보리밥은 만나기 힘들다. 경주 전역에 꽤 많은 보리밥집이 있다. 찬이 한 상 가득 나오는 곳이 대부분. 보리밥이라는 게 한 상 가득 받으면 좋지만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 찬으로 나온 나물에 된장찌개 넣고 쓱쓱 비벼 먹는 맛이 보리밥의 특징. 무게 잡고 먹으면 맛이 어색해진다. 안강읍에는 딱 맞는 보리밥집이 있다. 1인분 7000원. 상이 아닌 오래된 오봉(쟁반이 맞다)에 여러 가지 나물이 담겨 나온다. 양재기에 담긴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고 비비면 맛있는 보리밥 완성이다. 먹을 때는 찌개를 따로 먹어도 좋지만, 먹을 때마다 한 숟가락씩 국물을 떠서 비벼 먹으면 또 다른 맛이다. 고기나 생선 없이 먹었지만 잘 먹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곳이다. 추억의보리밥 (054)762-2102

경주 감포읍은 가끔 출장 가던 곳이다. 겨울이면 과메기나 미역 때문에도 갔지만, 좋은 액젓 공장이 감포에 있다. 사실 액젓은 조미료다. 조미료라 하면 MSG만 생각하지만, 음식에 맛을 더하는 것이 조미료다. MSG는 조미료의 한 종류일 뿐이다. 액젓으로는 풍부한 감칠맛을 낼 수 있다. 특히 꽁치액젓을 멸치액젓과 섞은 것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김명수 젓갈 (054)744-4466

감포의 가자미 회국수와 함께 나오는 민물새우 국물에 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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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회를 아낌없이 넣은 인심 좋은 감포의 회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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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에 가면 항상 국수 한 그릇 하고 온다. 지역에서 나는 가자미회로 만든 회국수다. 오래된 두 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시원한 맛에 물회와 국수를 찾지만, 사실 이 시기가 물회나 회국수가 가장 맛없는 시기다. 회도 그렇거니와 채소의 단맛이 없다. 회국수와 물회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이다. 물회를 시원한 맛에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면 상관없지만 말이다.

국수를 주문하면 회와 채소가 비슷한 양으로 나온다. 채소 위에 ‘살짝’ 회를 올리지 않는다. 그냥 듬뿍 들어 있다. 고추장에 비벼 먹다가 같이 나온 국물을 마시면 입에 착 감기는 감칠맛에 반한다. 처음에는 게를 넣어 삶았나 생각했다. 계산하며 물어보니 말린 민물새우를 넣고 국물을 내서 그렇다고 한다. 겨울에는 민물새우 넣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도 좋을 듯싶었다. 제철 맞은 시금치를 고명으로 해서 말이다. 할매횟집 (054)744-3411

액젓 소스에 찍어 먹은 신선한 차돌 뭉티기의 쫄깃한 맛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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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출고’한 뭉티기와 액젓 소스의 환상적인 감칠맛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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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티기, 생고기, 육사시미. 같은 음식을 의미하지만, 지역에 따라 부르는 것은 제각각이다. 생고기는 전라도 지방에서, 뭉티기는 경북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표준어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없다. 뭉티기는 신선해야 한다.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의 고기여야 제 맛이 난다. 배, 참기름, 간장, 다진 마늘로 양념해서 무친 것을 육회라 부르는데 이는 어제 팔고 남은 고기다. 무침은 어제, 뭉티기는 오늘 잡은 소다. 소를 잡으면 24시간을 도축장에서 계류해야 한다. 항생제, 미생물 검사 등을 하고 나서 소분장으로 가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예외가 있다. 뭉티기용 고기는 당일 출고가 가능하다. 그래서 소를 잡지 않는 휴일이나 일요일은 뭉티기가 없다. 뭉티기용 고기는 주로 기름기와 근육량이 적은 부위다. 엉덩이살을 주로 뭉티기로 사용한다.

필자가 먹어본 뭉티기는 차돌 뭉티기였다.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따로 먹은 것은 아니다. 도축장 갔다가 작업할 때 맛보기로 봤었다. 그다음이 등심에 있는 새우살. 소금도 없이 그냥 먹어보라는 말에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의외로 간이 딱 맞았다. 뭉티기용은 따로 있지만 모든 부위가 가능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경주에서 의외의 뭉티기 소스를 만났다. 간장과 액젓, 그리고 청양고추를 넣고 만든 소스였다. 한 번 맛보고는 원래 정석인 소스, 마늘, 고추장, 참기름을 옆으로 밀어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미료인 액젓을 잘 사용하고 있었다. 소고기가 가진 감칠맛에 핵산계 감칠맛인 액젓이 더해지니 맛이 끝내줬다. 쇠전뭉티기 (054)741-8968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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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김진영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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