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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탈레반은 정말로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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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탈레반 전사들이 지난달 15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떠난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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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27일 탈레반은 카불에 무력 입성했다. 카불은 소련의 점령에 이은 내전 와중에 포격으로 대부분의 건물과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된 폐허와 다름없었다. 검은 터번을 두르고 콜이라는 화장용 먹으로 눈가를 검게 칠한 탈레반 대원들의 모습은 폐허의 도심과 맞물려, 중세의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탈레반은 가장 먼저 유엔 단지로 가서 5년 전에 붕괴된 사회주의 정권의 수장 모하마드 나지불라를 찾아내서, 작살냈다. 돌과 몽둥이 등으로 맞아 죽은 나지불라와 그의 동생 시신은 중심가 원형 교차로의 교수대에 목이 매달린 채 공개됐다. 그들이 곧 설치한 종교경찰 청사에는 “이성은 개에게 던져줘라”라는 표어가 나붙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음악 방송이 금지되고,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가 식물뿌리로 이를 닦았다는 이유로 치약 사용까지 금기시됐다. 의사의 40%, 공무원의 50%, 교사의 70%가 여성이었는데 이들은 한순간에 실업자뿐만 아니라 빈민으로 전락했다.

25년 뒤, 지난 8월15일 탈레반은 다시 카불에 무혈입성했다. 카불은 인구가 10배 가까이 늘어난 450만명의 현대화된 대도시가 됐고, 탈레반의 일부 대원들은 전통 복장도 입지 않았다. 탈레반 지도부가 먼저 찾은 이는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이었다. 탈레반 지도부는 20년 전에 자신들의 정권에 대한 무력투쟁을 하며 미군을 선도했던 카르자이와 얼굴을 맞대고, 권력 이양 및 신정부 구성을 협의했다. 탈레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면과 화합을 밝히는 선전선동을 한다. 국제 언론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는 1일 카불의 700여명 여성 언론인 중 100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며, 모든 여성 언론인의 직장 복귀를 촉구했다.

탈레반은 진정으로 변한 것일까, 아니면 화장만 바꾼 것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탈레반은 25년 전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25년 전의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호기심만 부르는 혐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탈레반의 집권으로 아프간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관심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의 탈레반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은 아프간이 다시 테러 발진기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탈레반의 협조가 필요하다. 미국은 아프간 철군 이유 중의 하나였던 중국과의 대결을 위해서도, 궁극적으로는 탈레반의 아프간이 필요하다. 중국은 미국이 빠져나간 아프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의 세력 공백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세력 균형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통해서 인도양까지 세력권을 확장하면, 자신들을 봉쇄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무력화하는 길이 된다.

탈레반 역시 과거와는 달리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정권이 되려고 하는 것은 확실하다. 국제사회의 인정이 없이는 정권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당장 미국이 동결한 90억달러의 국고가 필요하고, 지난 20년 동안 서방의 원조에 기대어서 서방의 상품을 맛본 아프간 주민들을 이슬람 율법으로만 규율할 수 없다.

미국 재무부는 탈레반의 카불 입성 뒤 금지했던 아프간으로의 개인 송금을 2일부터 재개하는 조처를 내렸다. 아프간 국내총생산의 4%에 달하는 해외로부터의 송금은 아프간의 서민경제에 사활적이다.

탈레반이 진정으로 바뀌었냐는 질문은 의미 없다. 25년 전과 지금은 다르고, 이 다른 상황은 탈레반 및 국제사회의 대응을 다르게 할 것이 분명하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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