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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이제 탈레반은 카메라를 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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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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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지난 8월 31일(현지시간)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무기를 들고 활주로를 순찰하고 있다. / 카불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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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그들이 돌아왔다. 지난 8월 31일, 2461명의 미 장병이 희생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완전철수하면서 20년 만에 공식적으로 전쟁이 종료됐다. 미국이 떠난 자리를 탈레반이 다시 차지했다. 탈레반은 미군 철수 후 아프간의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면서 정부 구성에 한창이다.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탈레반의 악행은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과연 지금 탈레반은 20년 전 탈레반과 얼마나 다를까.

촬영 죄악시하던 탈레반의 변화

2001년 기자가 처음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할 때 탈레반 정부는 미국의 막강한 화력에 맥없이 밀려 퇴각한 직후였다. 탈레반 정부 인사로 누가 있었는지 취재하려 해도 사진이 없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탈레반은 그들이 믿는 극단주의 이슬람 규율에 따라 사진과 영상에 자신의 얼굴이 촬영되는 것을 죄악시해 사진이 없다고 했다. 실제도 취재하면서 탈레반과 인터뷰하려면 카메라 없이 오라는 황당한 주문을 많이 받았다. 이 때문에 인터뷰할 때마다 촬영에 애를 먹었다.

그런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평화협상을 할 때 한껏 차려입은 모습으로 기자들과 포토타임을 가졌다. 기자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탈레반을 아무렇지도 않게 촬영할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무혈입성하며 대통령궁에 들어가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앉아 기념 촬영을 한 사진이 전 세계에 배포됐다. 이 사진을 가만히 보면 탈레반들이 아직 카메라 렌즈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그들은 아직 이슬람 규율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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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지난 9월 1일(현지시간) 탈레반 지지자들이 미군 철수 축하행사를 열었다. 탈레반 깃발을 단 헬기가 상공을 날고 있다. / 칸다하르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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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탈레반이 과거와 달리 사진 촬영을 한 이유는 미디어전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돌아온 탈레반을 전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 그들이 죄악시하던 사진 촬영을 더는 마다할 수 없었다. 탈레반은 각종 SNS와 인터넷 네트워크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홍보한다. 탈레반이 2001년 퇴각 이후 처음엔 아랍계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했다. 알자지라 방송이나 알아라비아 등과 산에서 총을 들고 인터뷰하거나 자신들이 미군을 공격하는 영상 등을 배포하며 탈레반의 건재를 알렸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 소셜 네트워크가 성장하며 탈레반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성명을 발표하거나 자신들의 홍보 영상을 올렸다. 그러면서 이들은 홍보와 미디어전의 중요성을 서서히 터득한 듯하다.

탈레반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취재하는 언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홍보하면서 상당히 정치적인 태도로 미디어전을 전개했다. 카불이 함락된 후 화제가 된 것은 지난 8월 17일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 기자회견이다. 15일 카불이 함락되고 우왕좌왕하는 외신에 트위터를 통해 탈레반의 첫 기자회견이 있다는 안내 문자가 등장했다. 처음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진짜 탈레반이 보낸 건지 아닌지 외신 사이에 말이 많았다. 그러나 탈레반이 페이스북 생중계와 유튜브까지 연결한 기자회견장은 서방의 다른 기자회견장과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자비훌라 대변인은 여성을 존중한다는 내용과 외국 군대와 일한 사람들에 대해 복수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어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했다. 기자가 본 그 어느 외신 기자회견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다. 특히 생중계를 통해 기자처럼 현장에 가지 못하는 취재진을 위한 준비를 했다는 점에서 탈레반은 서구사회의 기자회견을 그대로 따라 했다,

BBC 생방송 도중 전화 연결까지

탈레반은 카불 현지에 있는 외신들의 취재에 나름 협조하며 전 세계에 나가는 자신들의 뉴스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카불이 함락된 당일인 지난 8월 15일 BBC의 세계뉴스 전문 채널 BBC월드의 앵커는 생방송 도중 갑자기 돌발 상황을 맞이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도하는 도중 앵커는 “죄송하지만 여기까지 해야겠다. 탈레반 대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밝혔다. 그후 연결된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을 탈레반 대변인이라고 밝힌 사람은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더라도 평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카불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국민 모두의 재산과 삶, 안전을 보장한다”고 주장하며 “누구에게도 복수는 없다. 우리는 이 나라 국민의 종복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인터뷰는 급하게 연결된 바람에 휴대전화 스피커폰 기능으로 방송이 이뤄졌다. 이 방송 책임자는 트위터에서 “이런 상황은 방송 인생 중 처음 겪는 일”이라고 밝혔다. 생방송 도중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은 탈레반이 파격적인 언론 플레이를 한다는 반증이다. 아프간의 한 현지 기자는 “탈레반은 미디어룸을 운영하며 많은 인원이 이를 위해 일한다. 내가 본 한곳은 여러개의 TV 모니터를 켜놓고 서방의 방송은 물론 대륙별 주요 방송사의 위성 방송을 시청하며 그날의 탈레반 뉴스를 실시간 체크한다. 탈레반은 더 이상 산에서 투쟁하는 게릴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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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남동부 호스트시 거리에 모인 군중이 미국, 영국, 프랑스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깃발로 덮인 관을 든 채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이며 아프간전 승전을 자축하고 있다. / 호스트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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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 정부로 인정받으려는 이유

탈레반이 미디어에 민감한 이유는 앞으로 탈레반이 세우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때문이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카불이 함락되며 각국 대사관들이 탈출한 상황에서 탈레반이 직접 외교관계를 맺기 위해 여론전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자신들이 극악무도한 이슬람 무자헤딘으로만 세계가 인식한다면 앞으로 탈레반에게 다가오는 난관이 많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탈레반이 카불 함락 후 기존 아프간 정부가 남겨둔 국고는 전무했다. 즉 예산이 0인 상황에서 정부를 물려받은 셈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아프간 중앙은행 국외자금 95억달러(약 11조원)를 동결했다. 벌써 아프간 내 생필품과 식료품 등 물가도 무섭게 치솟고 있다. 아프간 주민 하뮨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카불 전체가 암흑이다. 생필품값이 두 배 이상 뛰었고 은행에서 현찰을 인출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아프간 사람들은 모두 패닉에 빠져 있다. 아프간은 이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화폐가 바뀐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화폐가 돈인지 뭔지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탈레반은 정부를 구성해 내각이 결성되면 빨리 경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그러려면 국제사회의 탈레반 정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현 탈레반 정부를 두고 세계 각국은 고심하고 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테러조직인 탈레반인데 합법 정부가 된들 수교 관계나 경제적 협력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조차 아직 탈레반에 대한 관계 설정에 정확한 답을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탈레반 정부가 합법 정부로 인정받아야 악화된 경제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 탈레반의 계산이다. 그래서 아프간에 남아 있는 외국인에 대한 폭력적 행동은 전혀 할 수 없고, 자국의 외국 협력자들에 대한 강력한 보복을 아직은 하지 못할 수 있다. 자칫 탈레반은 역시 테러조직이라는 인식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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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대해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 워싱턴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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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에게만 ‘파격’?

이제는 한 국가의 당당한 정권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탈레반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대폭적인 변화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불 점령 이후 탈레반은 개방적이고 여성과 소수민족에 포용적인 정부 구성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서구사회 기준과는 많이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서로 눈높이가 다르다는 말이다. 탈레반으로서는 파격적인 정부 구성이 서구사회가 봤을 때는 그렇지 못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탈레반이 세우는 정부는 신정정치 정부이다. 신정정치란 성직자가 정치를 한다는 말이다. 서구사회의 민주주의 정치와 전혀 다른 형태이다. 또 탈레반은 샤리아(이슬람 원리주의)에 기반을 둔 법정과 정부를 세울 것이 당연하다. 모든 것은 샤리아에 기반을 두고 거기에서 조금 변화한 정도를 탈레반 나름의 파격이라고 발표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직장에 다니는 것을 허용한다는 말만 하더라도 그렇다. 서구사회는 이를 두고 평소 직장 다니는 서구사회의 여성을 떠올리겠지만 탈레반 입장에서는 여성이 보호자 없이 직장을 나오게 하는 것 자체가 파격이다. 그래서 직장은 허용하더라도 여성의 직장 내 행동반경을 제약할 것이고,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로의 눈높이 차이가 있다.

현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미국과 서구사회는 예상치 못할 정도의 급변하는 상황을 맞아 당황하고 있다. 이는 20년간 탈레반에 대한 서구사회의 정보와 분석이 많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다. 기자가 본 아프가니스탄은 늘 중세시대였다. 중세 사람들과 현재 사람들의 충돌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일의 근본 문제이다. 그래서 서구사회가 아프가니스탄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20년간 치른 아프간전쟁의 결론은 탈레반의 승리다. 우리 모두 이 혼란의 현대사의 목격자들이다.

김영미 다큐엔드뉴스 코리아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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