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정국을 삼킬 초대형 블랙홀의 조건을 차고 넘치게 갖췄다. 여야 한 쪽이 아닌 양쪽 모두가 의혹 대상이다. 정치·법조·언론계 일부가 결합한 카르텔이 의심된다. 상식을 벗어난 수익률은 부동산 민심을 건드리고, ‘50억 퇴직금’ ‘아빠 찬스’ 논란은 시대정신으로 불린 공정 이슈와 닿아있다. 무엇보다 대선이 불과 5개월 남았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어느 때보다 의혹과 여론에 민감하다. 비리 의혹의 작은 가지 하나, 잔뿌리 하나도 폭발력이 크다. 대장동 의혹은 현재 일부 가지들이 드러난 정도이지만, 그 잠재적 파장을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정치권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뿌리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뿌리가 여야 어느 쪽에서 뻗어나왔는지, 어디까지 뻗쳐갔는지가 향후 정국의 관건이다. 사실관계가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정국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에서 대장동 블랙홀을 벗어난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정책 어젠다가 핵심 의제로 떠오르기 어려울 거란 관측도 있다. 대장동 블랙홀은 여야 정치권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풀어봤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카페에서 열린 청년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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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무슨 상관이 있나.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이 지사와 대장동 개발 특혜 연관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그만큼 이 지사와 대장동 의혹의 관련성에 대한 여야의 시각이 확연히 갈린다.
국민의힘 등 보수 야권에서는 이 지사를 ‘의혹의 몸통’ ‘설계자’로 부른다. 반면 이 지사는 ‘경비원 보고 왜 도둑을 완벽히 못 막았냐고 하는 것’이라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특혜성 개발에서 시민 권익을 지키려한 ‘경비원’에 스스로를 빗댄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개발사업이 이 지사가 성남시장 재임기인 2014년 추진된 점, 의혹의 핵심에 선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이 지사의 시장 선거를 도운 인물이라는 점 등을 의혹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유 전 본부장이 성남시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로 구속된 만큼, 수사의 칼끝이 당시 시정 책임자인 이 지사를 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특혜 업체로 지목된 화천대유에서 고문으로 일한 권순일 전 대법관이 이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무죄 확정을 주도했다는 ‘재판 거래’ 의혹도 제기한다. 여러 정황이 ‘몸통’으로 이 지사를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이 지사는 적극 반박하며 오히려 역공을 편다. 성남시장으로서 설계한 것은 성남시 몫의 개발 이익을 확보하는 부분이며, 유 전 본부장이 측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민주당 유력 주자로서 이 지사는 검찰 수사 향방에 따라 가장 큰 잠재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본선까지 야당이 파상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 캠프에선 의혹과 거리를 두면서도,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반면 의혹의 뿌리가 보수 인사들로 확인되면, 이 지사에게 중도·무당층 표심이라는 과실이 돌아갈 기회도 열려 있다.”
- 대장동 의혹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는 무슨 상관이 있나
“부동산 개발특혜 의혹이라는 본류와 연관된 의혹은 제기돼 있지 않다. 다만 문제의 인물들과 얽힌 ‘카르텔’ 의혹이 있다.
부친의 부동산 거래가 의혹의 불을 당겼다. 부친이 2019년 연희동 주택을 19억원에 팔았는데, 집을 산 사람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받는 화천대유 최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누나였다. 김씨 누나는 대장동 개발 사업시행사인 ‘성남의뜰’에 주주로 참여한 천화동인 3호 사내이사이기도 하다. 윤 전 총장은 김씨의 이력을 이번에 알았고, 집도 시세보다 오히려 저렴하게 팔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여당과 야당의 경쟁주자들은 ‘로또 당첨만큼 어려운 우연’이라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박영수 전 특검이 의혹의 주요 인물로 떠오른 점도 변수다. 화천대유에서 박 전 특검은 법률 고문, 박 전 특검 딸은 팀장을 맡아 일했다. 박 전 특검이 사법처리 수순을 밟을 경우 그와 가깝게 지내며 함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수사를 한 이력을 두고 윤 전 총장에게도 화살이 돌아올 수 있다. 이미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은 박 전 특검과의 인연을 고리로 공세를 펴는 중이다. 윤 전 총장은 박 전 특검 관련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김씨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 김씨가 박 전 특검에서 윤 전 총장 인사문제를 언급했다는 주장도 있다. 윤 전 총장측은 이 같은 주장을 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부산 사상구 국민의힘 당협위원회 사무실을 찾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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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의 대선 경선에 영향을 미칠까
“여야 양쪽으로 드러난 영향력은 현재까지 크지 않다. 민주당 경선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지사는 지난 3일 ‘2차 슈퍼위크’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본선 진출 티켓을 거의 손에 쥐었다. 서울·경기 지역 대의원·권리당원 투표와 3차 국민선거인단 투표 등 남은 일정에서도 이 지사 우세가 예상된다. 의혹은 ‘이재명 대세론’에 균열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 지사 중심으로 결집하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정면 돌파 기조로 야당과 각을 세운 것도 지지층 이탈을 막는 데 일조했다. 검찰 수사결과는 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가 뽑히는 오는 10일 전에 나오기 어렵다. 그만큼 영향이 제한적이다. 이 지사가 민주당 최종 후보로 선 뒤에는 당 지지층과 이 지사 결합도가 높아지는 컨벤션 효과로,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야당 후보와 맞붙는 본선이다. 수사 결과 이 지사 본인이나 주변의 혐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표심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상황은 좀 더 복합적이다. 당장 오는 8일 발표되는 2차 예비경선(컷오프)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 8명의 후보 중 4명을 남기는 컷오프에서 윤 전 총장이 무난하게 선두권에 안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친의 부동산 거래나 박 전 특검과의 관계 등으로 불거진 의구심은 명확한 사실관계로 입증되진 않은 상황이다. 다만 최종 후보가 선출되는 오는 11월 5일까지 한달 여가 어느 후보의 시간으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이재명’ 같은 뚜렷한 1강 주자가 없는 만큼, 지지층 흐름도 이후 상황에 따라 여당보다 유동적인 형태로 흐를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으로선 박 전 특검 수사의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검찰 수사 방향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 핍박받고 투쟁한 ‘검찰 투사’로서 존재감을 부각할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 홍 의원과 유 전 의원 등 경쟁주자들은 고위 법조계 인사들이 얽힌 카르텔이 드러날수록 윤 전 총장과의 차별화된다. 곽상도 의원에 이어 야권 인사 의혹이 또 불거질 경우 야당 전체에 부담이지만, 경선에선 ‘개혁 보수’에 힘이 실릴 여지도 있다.”
4일 서울 송파구의 한 도로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 관련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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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민주당은 ‘국민의힘 게이트’, 국민의힘은 ‘이재명 게이트’라고 부르나.
“프레임 싸움은 모호한 사안을 바라보는 사회의 확고한 틀이 잡히기 전에 일어난다. ‘이름 붙이기’ 싸움에서 이기느냐가 지지층 이탈을 막고, 중도층을 끌어오고, 반대층 공격을 밀어내는 데 중요한 무기다. 대장동 의혹에서 여야가 초반부터 줄곧 프레임을 두고 다투는 이유다.
민주당은 초반부터 ‘국민의힘 게이트’로 명명했다. 대장동 개발이 이뤄질 당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였고, 이 때문에 특혜 업체에도 곽상도 의원과 원유철 전 의원 등 국민의힘 쪽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것이다. 곽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등으로 받은 50억도 이런 프레임을 강화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줄곧 ‘이재명 게이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지사를 맹공한다. 이 지사를 ‘몸통’으로 보고,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한 권순일 전 대법관과 이 지사의 재판 거래 의혹 등도 제기한다.
이런 프레임 차이는 특검 도입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이어진다. 민주당은 야당이 신속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특검을 주장한다고 여긴다. 특검 수사의 범위와 대상, 특검 선출 등을 두고 여야 합의를 할 시간에 조속히 수사해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국민의힘은 현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검경의 수사로는 여당 비리를 드러낼 수 없다고 본다. 독립성과 공정성을 갖춘 특검을 세워 이 지사 관련 의혹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프레임 전쟁은 여야 대표선수가 가려진 대선 본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전까지 프레임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여야 총공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선을 앞두고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나.
“대선 정국을 뒤흔든 대형 의혹이 더러 불거진 적이 있다. 이번처럼 여야의 주요 주자들이 모두 거론되는 경우는 아니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례는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BBK·다스 실소유주 의혹이다. 특히 국민의힘이 ‘아픈 구석’이었던 이 의혹을 최근 적극적으로 입에 올린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대선 14일 전 이 후보에 대한 무혐의 결론을 발표했다. 그의 대통령 당선 직후 특검법이 통과됐고, 취임식 4일 전 다시 무혐의 결론이 나왔다. 이후 재수사가 이뤄졌다. 13년이 지난 2020년 10월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이 확정됐다. 야당이 BBK 의혹을 자주 언급하는 데는 여러 노림수가 있다. 당시 대선 전 특검이 이뤄진 것을 들어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다. 동시에 재수사로 결국 이 전 대통령이 수감된 것을 들어 취임 전 의혹을 털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사를 겨냥해 회의장 벽에 써붙인 ‘화천대유는 누구껍니까’도 민주당이 ‘다스는 누구껍니까’라고 한 것을 본딴 것이다.
2002년 16대 대선 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인 이른바 ‘병풍 사건’이 불거졌다. 검찰 수사 결과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후보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선거 패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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