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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가리비·핵잠수함 놓고 ‘에너미’된 영-프…‘프레너미’는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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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잠수함 논란, 어업권 분쟁

썰렁한 양국 관계 바닥 모르고 추락

역사적 적대와 대미 태도 등이 뿌리

국내정치적 동기도 작용 봉합 쉽잖아


한겨레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2019년 8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왼쪽)을 만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차 테이블에 구둣발을 올려놓고 있다. 발을 올리는 족대로나 쓸 정도로 작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말에 존슨 총리가 장난처럼 한 행동이었으나 그의 무례함을 드러내주는 장면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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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정신 차려라.”(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영국은 (쓸모없는) 다섯번째 마차 바퀴다.”(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의 갈등이 갈수록 심상찮다. 미국과 영국이 지난달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프랑스의 660억달러(약 77조5천억원)어치 디젤 잠수함 수출 계약을 무산시킨 게 결정적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세기의 거래’를 망친 프랑스는 “등에 칼을 꽂은 행위”라고 반발했다. 프랑스 정부 인사들은 영국은 미국의 꽁무니나 쫓는 나라라고 공공연히 비난한다. 영국은 존슨 총리 발언에서 보듯 이웃을 달래기는커녕 놀림조의 태도까지 보인다. 영국과 프랑스의 전통적 라이벌 관계가 본격적으로 부활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가리비가 뭐길래


그 과정에서 브렉시트 협상 중에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어업권 분쟁까지 도졌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정부 대변인이 영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11월부터 제재를 가하겠다는 방침을 21일 밝혔다고 보도했다. 아탈 대변인은 “에너지 가격, 항구 접근, 관세 등 여러 제재 형태가 있다”며 구체적인 제재 방식까지 언급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어업권 문제를 놓고 25일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프랑스가 실력 행사까지 공언한 것은 영국이 프랑스와 가까운 영국 왕실령 채널제도에서 조업할 수 있는 다른 유럽 국가 어선 규모를 재심사를 통해 축소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채널제도에 속한 저지섬 해역에 대한 외국 선박 조업권 신청 95건은 받아들였지만 75건은 거부했다. 프랑스 등 외국 배들이 그동안 영국 해역에서 잡은 수산물은 연간 6억3500만유로(약 8685억원)어치, 영국 어선들의 다른 유럽 국가 해역 어획량은 1억1천만유로어치에 이른다. 그래서 영국은 어업권을 브렉시트 협상 카드로 삼았고, 프랑스는 자국 어민들 생계가 위협받는다며 강경하게 나오는 것이다. 어업권 분쟁은 이 해역의 대표적 수산물 이름을 따 ‘가리비 전쟁’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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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내각에서는 심지어 자국에서 전기를 제공받는 채널제도에서 에너지 공급을 끊을 수 있다고까지 한다. 이에 천연가스를 유럽에 대한 압박 카드로 써온 러시아와 비슷한 행태라서 놀랍다는 반응도 나온다.

에너미→프레너미→에너미?


두 나라 관계의 험악함을 보여주는 이런 풍경들은 긴 관점으로 보면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비슷한 면도 많은 이웃이지만 적대와 화친이 뒤섞인 관계를 맺어왔다. 한 프랑스 문인은 영국을 “우리의 친애하는 적”이라고 했다. 양국 관계를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친 조어인 ‘프레너미’나 ‘싸우는 동맹’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레너미’도 20세기 이후에야 어울리는 말이다. 1066년 지금의 프랑스 북부에 있던 노르만 왕조가 영국을 정복한 이래 두 나라는 ‘가장 오래된 라이벌’이었다. 양국은 백년전쟁, 7년전쟁, 나폴레옹 전쟁, 식민지 쟁탈전 등 대규모 전쟁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900년 적대 관계의 대전환을 불러온 것은 1904년 영-프 우애협약이었다. 독일의 무서운 국력 성장에 양국은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식민지 이권을 사이좋게 나누기로 했다. 이후 1·2차 대전에서 함께 싸웠고, 소련에 맞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심 구성원들로서 어깨를 결어왔다.

그러나 외부의 적이 강제한 화친의 이면에서 불신과 질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프랑스 제5공화국 창시자 샤를 드골(1890~1970)이다. 나치의 침략으로 영국으로 망명해 레지스탕스를 이끈 드골은 ‘보호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심하게 갈등했다. 드골을 비롯한 프랑스 망명 세력의 대표성, 대독일 전략과 전술, 프랑스의 전승국 지위를 놓고 드골과 처칠은 서로를 불신했다. 처칠은 드골을 “이기적이고, 거만하고,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믿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2000년에 공개된 영국 정부 문서에는 처칠이 드골을 정치적으로 제거하자고 내각에 제안했다는 내용까지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처칠에게 보낸 서한에서 드골을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진 독재적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처칠은 드골이 전후에 소련과 밀착할 가능성이 있다며 루스벨트의 경계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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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의 윈스턴 처칠(왼쪽)과 샤를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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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드골은 영·미의 지나친 밀착과 프랑스의 이류 국가화를 경계하며 독자 노선을 강화했다. 하이라이트는 1963년과 1967년에 유럽연합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려는 영국에 퇴짜를 놓은 것이다. 이는 드골의 복수로도 여겨졌다. 영국은 드골 사후인 1973년에야 유럽경제공동체에 승선할 수 있었다. 핵개발에 성공한 드골이 1966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 통합사령부에서 프랑스군을 철수시킨 것도 미국과 영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글로벌 브리튼’과 골리즘


현재 진행 중인 영-프 갈등엔 지난 역사에 대한 집단기억과 전후 질서 구축 과정에서 빚은 갈등이 한 배경으로 작용한다. 특히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지난해 1월 브렉시트 실행은 양국 관계의 하강기를 불러왔다. 유럽공동체에 간신히 낀 영국이 제 발로 걸어 나간 것은 아이러니다. 결별을 강행한 존슨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프랑스가 지배한다”, “프랑스는 자기 국익을 유럽 전체의 꿈으로 포장한다”고 비난한 것은 영국 내 브렉시트 찬성파의 인식을 대변한다.

흥미로운 것은 존슨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각각 처칠과 드골의 정치적 후계자로도 비친다는 점이다. ‘글로벌 브리튼’을 부르짖는 존슨 총리는 영국의 약화된 영향력을 미국이나 영연방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로 상쇄해야 한다는 처칠의 노선을 잇는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가 핵잠수함 기술 이전 발표와 함께 출범시킨 오커스(AUKUS) 동맹도 중국 견제를 내건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결속력을 보여준다.

마크롱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맞서 유럽의 ‘전략적 독자성’을 강조해왔다. 기존 나토의 틀에만 안보를 의존하기 어려우니 유럽이 독자적으로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골의 정치사상을 뜻하는 골리즘(드골주의)의 계승자로 불린다.

이런 노선과 전략의 차이는 전통적인 지정학적 자기 인식과도 연결된다. 즉, 영국은 해양에서 핵심 이익을 찾아야 하며, 대륙에 붙은 프랑스는 유럽대륙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처칠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 드골과 다투다 “유럽과 열린 바다 중에 택하라면 우리는 언제나 열린 바다를 택할 것이다. 나한테 당신과 루스벨트 중에 택하라면 언제나 루스벨트를 택할 것이다”라고 했다. 드골은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을 막으면서 “잉글랜드는 섬나라이고 해양 국가다. 그들은 자국 통화와 시장, 가장 다양하고 때로는 가장 먼 나라와도 닿는 공급선으로 연결돼 있다”고 했다. 영국의 ‘해양 국가론’에 대해 ‘그러면 유럽 말고 미국과 붙으라’며 냉소를 보낸 셈이다.

최근 갈등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에 빠져들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런던과 파리는 어느 때보다 더 서로를 필요로 한다”(<파이낸셜 타임스>)며 양국이 다툴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디언>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프랑스를 방문하는 등 미국은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데 영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미국 당국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존슨 총리의 포퓰리스트적 태도나 내년 4월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을 생각하면 양쪽 지도자들이 갈등을 쉽게 봉합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는 국내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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