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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대통령 얼굴 찍던 시선이 ‘화양연화’에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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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전속 출신 박상훈 사진가 전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촬영


한겨레

“제가 좋아하는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듯이 꽃과 풀을 관찰하고 찍었답니다. 그러다 일순 깨달았죠. 아, 지켜보는 이 순간 내가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인지….”

한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을 뜯어보고 촬영했던 자신의 시선이 요사이 꽃과 풀을 집요하게 감돌고 있는 이유를 사진가 박상훈(69·사진)씨는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가 내놓은 카메라 앵글 속엔 활짝 피어오른 꽃이나 신록 가득한 풀밭들로만 차있지 않다. 시들어 지고 있거나 벌레 먹은 꽃잎들, 땅 위로 뻗어오른 새순과 맥없이 하늘거리는 풀잎들, 꽃술로 날아오는 벌레들의 날갯짓 등도 들어 있었다.

박씨가 최근 내놓은 근작들은 생동하다 사그라지는 활력과 사멸의 숙명을 담은 꽃과 풀 무더기의 사진들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거와 의전용 공식사진을 촬영했고, 전도연, 안성기, 박중훈 등 스타 사진을 찍은 상업작가로도 알려진 그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나우에 근작전 <화양연화>(31일까지)를 차렸다.

11년 만에 여는 전시에서는 지난 2017년 이래 작업실 부근의 도산공원과 봉은사 등지를 산책하면서 눈에 들어온 연꽃, 붓꽃, 민들레꽃, 강아지풀, 죽순 등의 세부를 찍은 사진들을 보여준다. 흰 배경에 클로즈업된 여러 꽃과 풀들의 자태는 섬세한 미감과 더불어 비장하고 처절한 감흥을 안겨준다. 삶에서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을 뜻하는 한자성어이자 왕자웨이 감독의 홍콩 누아르 영화 제목인 ‘화양연화’(花樣年華)를 표제로 삼은 것도 그렇다. 꽃과 풀의 삶에서 생동하는 생명을 목격하고 느낄 수 있었던 감각적 체험에 대한 영감이 프로작가라면 진부하게 비칠 수 있는 풀꽃에 몰입한 배경이 됐다고 한다.

“2017년 먼저 보내선 안 될 지인이 세상을 떠났어요.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다가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꽃과 벌레, 풀 등의 미물이 보여주는 약동을 보고 새삼 생명을 느꼈고,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게 됐어요. 출품작 가운데 봉은사 연못서 찍은 연꽃을 보세요. 피고 지는 모습이 우아한 춤사위 같습니다. 그 자태와 그걸 지켜보는 우리들 모습이 바로 화양연화입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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