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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하림그룹, 아들에게 회사 물려주려 아들 회사에 ‘통행세’ 몰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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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홍국 하림 회장. 하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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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그룹이 총수 아들의 개인회사에 물량을 몰아줘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이는 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나, 총수의 개입 여부가 명백히 입증되지는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 일가의 개인회사 올품(옛 한국썸벧판매)에 구매 물량을 몰아주고 주식을 싸게 매각한 등의 혐의(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등)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48억8800만원을 부과했다고 27일 밝혔다. 한국썸벧판매는 2013년 옛 올품을 흡수합병하면서 상호를 ‘올품’으로 바꿨다.

올품은 김홍국 하림 회장이 2012년 아들 김준영씨에게 지분 100%를 증여한 회사다. 김씨는 올품을 통해 한국인베스트먼트(옛 한국썸벧)의 지분 100%를 들고 있으며, 지주회사인 하림지주에 대한 두 회사의 지분 총합은 24.6%에 이른다. 올품은 총수 아들의 개인회사이면서 동시에 하림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하림그룹은 2011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도 올품은 체제 밖에 남겼다.

가장 문제가 된 건 하림그룹 계열사들이 올품을 통해 동물약품을 통합 구매한 행위다. 양돈농장을 운영하는 하림 계열사 5곳은 원래 대리점에서 직접 동물약품을 샀으나, 2012년부터 2017년 초까지 올품을 통해 모든 물량을 구매했다. 올품이 대리점에 판매한 제품을 다시 사들여 계열사에 공급하는 구조였던 셈이다. 계열사들은 이에 더해 기존에 사용하던 타사 약품을 올품이 만든 약품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이는 올품이 대리점을 상대로 강력한 협상력을 갖는 결과를 낳았다. 올품이 대리점에서 구매하는 물량이 상당한 만큼, 대리점으로서는 올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올품 제품을 더 적극적으로 팔 수밖에 없었다. 통상적인 부당지원 사건에서 위법성을 따질 때는 가격 수준을 중요하게 보지만, 이 사건에서는 가격보다 물량 그 자체로 인한 혜택이 컸던 셈이다. 올품은 대리점에 올품 제품 판매 목표량을 설정해준 뒤, 이를 달성하면 올품이 해당 대리점에서 사는 계열사 공급용 제품의 마진을 더 많이 내주기도 했다. 실제로 올품의 외부 판매 매출액은 2011년 41억원에서 2016년 106억원으로 뛰었다.

올품이 하림그룹의 사료 제조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통행세’도 문제가 됐다. 이들 계열사는 사료첨가제를 살 때 원래 제조사와 직접 거래했으나, 2012년부터는 올품을 통해 구매했다. 올품은 사실상 하는 역할이 없는데도 중간 마진 3%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하림지주와 올품 간 주식 거래도 도마에 올랐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법 위반을 해소하기 위해 하림지주(당시 제일홀딩스)는 옛 올품 지분 100%를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에 넘겼다. 이때 옛 올품이 들고 있던 NS쇼핑 지분 2.6%의 주식가치를 산정한 방식이 문제가 됐다. 매매사례가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득원가인 7850원에 산정했으나, 당시 NS쇼핑 주식이 5만3000∼15만원에 거래된 사례가 있었던 것이다. 5만3000원 기준으로 한 옛 올품의 주식가치는 최종 평가된 1129원보다 다소 높은 1168원이다.

하림그룹은 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올품을 도운 것으로 추정된다. 김 회장이 아들에게 올품 지분을 전부 물려준 직후 지원 행위가 시작된 탓이다. 다만 위원회에서는 이런 의도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김 회장이 통합 구매를 지시한 행위에 대한 물증은 확보됐으나, 거래 조건 등에 관여한 사실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한다. 애초 공정위 사무처는 심사보고서에서 김 회장 등을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배제됐다. 5년간 올품이 지원받은 금액은 총 70억원이다.

하림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부당지원이 없었다는 점을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과도한 제재가 이뤄져 매우 아쉽다”고 밝혔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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