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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국악 찰떡궁합…우리도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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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거문고를 연주하는 궁중악사 `가연` 역의 최영훈(왼쪽)과 소리꾼 `채선` 역을 맡은 이다연이 남산골한옥마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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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자주국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돌아오라."

일본과 청나라가 조선반도에 대한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했던 1893년. 고종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에 사절단을 급파하며 이 같은 특명을 내렸다.

사절단을 인솔할 출품사무대원에는 참의내무부사 정경원이 임명됐고, 궁중악사 10명이 사절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임무는 박람회에서 조선이 고유의 문화를 가진 자주독립국가임을 세상에 알리고, 조선 악기를 기증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 주최로 오는 7일까지 열리는 '제2회 조선왕릉문화제'를 위해 제작된 '홍유릉 오페라-나는 조선에서 왔습니다'는 국운이 기운 조선 말 예술인들의 나라사랑 이야기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조선 사절단이 참가했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탄생한 오페라다. 31인조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고 수많은 오페라 성악가들이 무대에 오르지만 극을 끌고 가는 주인공 2명은 모두 국악인이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궁중악사 '가연' 역의 최영훈, 미국 이민자인 소리꾼 '채선' 역을 맡은 이다연의 실제 직업이 배역과 같다. 최영훈은 국립창극단 단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이수자다. 이다연은 한국의집 예술단원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다. 두 주인공을 최근 서울 필동 남산골한옥마을에서 만났다.

"가연은 나라를 대표해서 온 애국심과 책임감이 투철한 인물인 반면, 채선은 먹고 살길을 찾아 미국에 이민 온 생활력 강한 여성이에요. 만국박람회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채선은 조선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연을 우연히 만나게 돼요."(최영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이었던 채선의 마음을 움직여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게 한 것은 조선의 음악이었다.

"가연은 박람회장의 조선관을 찾은 서양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으며 거문고를 연주해요. 가연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쓸쓸하면서도 처연한 거문고 소리에 채선은 자신도 모르게 판소리를 부르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내죠. 조선의 음악을 노래하며 비로소 채선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돼요. 이들 둘의 합주가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어요."(이다연)

이 작품은 국악과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최영훈과 이다연을 제외한 모든 출연 배우는 오페라 가수들이다.

"기본적으로 오페라 형식에 충실한 작품이에요. 여기에 판소리와 거문고, 그리고 꽹과리가 함께하는 구도죠.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창을 하는 게 이질적이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판소리적 요소를 빼고 그냥 노래 부르듯 해야 하나 했는데 음악감독께선 국악적 느낌을 살리길 원했어요. 실제로 해보니 판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요."(이다연)

"박람회장에서 펼쳐진 가연과 채선의 합주 장면에선 거문고와 판소리에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며 음악적 확장을 이뤄내는데 굉장한 감동이 있어요.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유릉을 무대로 공연했다는 점도 의미가 커요. 우리 정체성의 뿌리엔 우리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어요."(최영훈)

홍유릉오페라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대면공연 없이 다음달 1일 오전 0시 30분 MBC에서 방송된다. 이후 조선왕릉문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공연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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