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18시간 강행군 끝에 배심원단 만장일치 '무죄' 결론]
법정에 앉아 있는 판사들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
대학원 지도교수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뒤 이어진 법적분쟁을 위해 선임했던 이은의 변호사와의 갈등 끝에 고소당했던 여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9일 오전 9시부터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폭행, 공동주거침입)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30대 여성 A씨와 같이 기소됐던 모친 그리고 외삼촌 등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단 1회의 공판으로 결과까지 내야하는 국민참여재판 특성상 9일 오전 9시 배심원 선정부터 다음날인 10일 새벽 3시경 판결 종료까지 총 18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재판 본 내용만 15시간 넘게 진행된 이 사건에서 양측 공방을 지켜본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무죄'로 평결했다. 재판부도 배심원단 평결을 받아들여 그대로 '무죄'로 선고했다.
A씨는 2017년 서울 시내 한 대학원을 조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던 중 지도교수의 성적 괴롭힘과 대학 당국의 부당한 대응을 알리고 형사고소를 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은 뒤 교수 측은 오히려 A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A씨는 자신을 변호할 변호인을 물색하다 당시 성범죄 피해사건 관련 전문가로 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던 이은의 변호사를 찾아 선임하게 됐다.
A씨는 이은의 변호사에게 민형사 사건에 관한 법률대리 위임계약을 맺고 함께 재판준비를 하던 중, 이 변호사와 갈등을 빚게 됐다.
재판부 의견서 제출 등에서 이견을 보이다 마찰을 빚는 과정에서 이은의 변호사가 사임을 원했다.
이에 A씨가 변호사 교체를 위한 변호사비용 반환을 요구하며 2019년 4월2일 모친 등과 함께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갔다가 고소를 당했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은의 변호사가 로펌 대표변호사의 초임변호사에 대한 성폭행 및 피의자 사망 관련 사건 발생 및 고소 등 경위와 피해자 B씨의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다. 2021.5.31/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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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변호사는 A씨 일행의 항의 방문에 대해 공동폭행, 공동주거침입 그리고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A씨와 모친 등 일행이 변호사실 출입을 저지한 사무장을 밀치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폭행이 있었고 업무를 방해했다는 취지였다.
검찰도 이은의 변호사 측 고소내용을 반영해 A씨 일행을 기소했다. A씨를 포함해 모친과 외삼촌 등 4명이 모두 공동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A씨 측은 변호사사무실 방문이 수임료 반환을 독촉하기 위한 것이었고 폭행이나 업무방해 의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 측은 폭행과 주거침입, 업무방해의 결과가 발생했다며 A씨 일행에게 '유죄'를 선고해달라며 A씨에게 벌금 150만원, 다른 일행들에게도 각각 120만원~150만원씩 구형했다.
검찰 측 주요 증거 중 하나는 변호사사무실에서 수습교육을 받고 있던 인턴 변호사가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이 영상에는 A씨 일행이 이은의 변호사실을 들어가기 위해 사무장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과의 대화 등이 담겨 있었다.
해당 영상에 대해 검찰은 폭행과 주거침입 그리고 업무방해가 명백히 드러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폭행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물리적 충돌이 아니었고 설사 양측이 다소 상해를 입었어도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이었다는 입장이었다. 폭행혐의를 받는 일행 중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로 이동을 해야하는 60대의 시각장애인 여성 선교사도 있었다. A씨 측은 시각장애까지 있는 60대 여성이 30대의 젊은 남자 사무장을 폭행했다고 기소한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오히려 촬영된 사건 당시 영상에서 휄체어에서 일어나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큰 소리를 질렀단 이유로 여성 선교사에게 A씨와 같은 벌금 150만원형을 구형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A씨 측 변호인단의 요청에 의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리게 됐다. 애초 사건 규모가 판사 한 명이 판단하는 단독 재판부 사건이었으나 변호인단은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정합의 신청을 통해 판사 3명이 심리하는 합의 재판부가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합의부에 재배당됐다. 여기에 더해 변호인단은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분쟁'이라는 사건 성격상 비법조인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비법조인의 판단을 구해보고 싶다고 했고 법원도 받아들여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유튜버 양예원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 최모씨의 항소심 선고공판 방청을 마친 뒤 법률대리인 이은의 변호사와 함께 소감을 밝히고 있다.2019.4.18/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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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등에 알려졌던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스스로 선임했던 유명 변호사와의 갈등으로 오히려 고소를 당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법조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A씨 측 변호인단은 법무법인 지평(곽경란·최정규·이혜온), 덕수(정민영·이대호·황준협), 이공(김선휴)의 젊은 변호사들이 수임료 없이 공익 사건으로 맡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재판을 취재진 뿐 아니라 일반 방청객들도 끝까지 남아 방청하기도 했다.
이날 이은의 변호사와 사건이 있던 2019년 4월 당시의 변호사사무실 사무장 등은 각각 공동폭행과 업무방해를 주장하는 검찰 측 피해자 증인으로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이른바 '미투 사건' 취재 과정에서 이 사건의 고소인인 이은의 변호사와 피고소인 A씨 등 양측을 모두 알고 지냈다는 MBC PD수첩 현직 피디가 A씨 측 증인으로 나와 중요한 증언을 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단이 검사와 변호인 양측의 변론과 주장을 듣고 만장일치로 유무죄 평결을 정해 재판부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재판부가 배심원단 평결을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재판부 재량에 달려 있지만, 최근엔 대체로 배심원단 의견을 존중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앞서 지난 10월에 열린 별도의 변호사비용 반환 청구 민사소송 2심에선 이은의 변호사가 A씨에게서 받은 민사사건 착수금 중 일부를 돌려주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됐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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