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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소파와 유럽식 조명·애니메이션…국립경주박물관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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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왼쪽부터) 불교사원실의 반가사유상, 경주 갑산리 전불, 봉화 서동리 석탑 사리장엄구, 사천왕사 중앙 녹유신장상 (활을 든 녹유신장). [사진 제공 = 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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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가운데 푹신한 소파와 유럽식 조명이 있다니…박물관이 변신하고 있다.

수학여행 단골 코스인 국립경주박물관이 관람객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새단장했다. 신라미술관 2층에 있던 기존 황룡사실을 확장 개편해 불교사원실을 만들어 지난달 24일부터 공개했다.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는 삼국유사 구절처럼 신라 최초 사찰인 흥륜사부터 보물인 감은사 서탑 사리기·황룡사 찰주본기 등 317건 524점을 모아 신라 사찰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우선 입구 바깥 계단홀에 신라 최대 규모 황룡사의 기와지붕 끝 장식인 '치미'(높이 182㎝)를 관객 눈높이에 맞게 배치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통일 직후 대표 사찰인 사천왕사 녹유신장상벽전도 주위에 배치됐던 당초문전과 지대석을 재현하니 전체 규모와 건축적 맥락을 파악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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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원실의 봉화 서동리 사리기와 입구 인근 계단홀에 배치된 황룡사 치미 [사진 제공 = 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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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후반기 봉화 서동리 사리기는 99개 작은 탑들이 모인 모습에서 신라인들의 염원이 엿보인다. 당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유행이라 신라인들이 다라니(불교의 비밀스러운 주문)를 넣은 작은 탑을 봉안해 공덕을 쌓고자 했단다. 엄지손가락 크기 작은 탑 바닥 구멍에 염원을 적은 종이를 말아 끼워 넣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광철 학예연구사는 "황룡사 구층목탑 사리공에 봉안됐던 연꽃모양 받침이 가운데는 은, 바깥은 금으로 확인돼 '찰주본기'에서 유리로 만든 사리병을 안치한 '금은고좌'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며 "분황사의 은으로 만든 합에 들어있던 직물도 고려시대 불교 복장에서 다수 확인된 능조직 구조를 바탕으로 한 것도 확인돼 창건당시와 고려시대 사리장엄구가 혼재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대사는 입증이 쉽지 않은데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재질 조사로 새로 알게된 사실이다. 전시실은 저반사 유리 진열장과 강화된 내진 설계를 통해 관람객의 가시성을 높이면서 문화재 안전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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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서역인 흙인형, 창원 현동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낙타모양 토기, 경주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황금보검, 경주 식리총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금동신발. [사진 제공 = 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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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변신과 맞물려 준비한 특별전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도 내년 3월 20일까지 열린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깊은 눈매의 서역인 조각이 관람객을 맞는다. 국내 거주 외국인 인구가 지난해 기준 250만명을 넘어선 시대다. 우리는 이미 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낯선 사람들의 방문이나 정착 등 외래 문화가 유입돼 서로 '교류'한 장면을 외래계 문물 172건 253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조선시대 중국 화폐와 삼한시대 요령식 동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뒤로 화살쏘는 모습 등 외래 문화 영향의 증거를 한자리에 모였다. 경주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출토된 황금보검이나 낙타 조각, 서역인 인형 등이 멀리 중앙아시아 영향력도 엿보인다. 백제 유물로 자주 출토된 금동 신발은 백제에서 만들어 신라에 선물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시대 페르시아 문양과 나란히 진열돼 새로운 맥락을 파악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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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늑도에서 출토된 삼한시대 야요이계 토기와 경주 구황동 원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오리모양 뿔잔. [사진 제공 = 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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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학예연구사는 "영산강 지역에서 기원전 1세기경 제조된 일본식 원통 토기인 '야요이 토기'가 80%이상 나온 것은 단순히 토기만 유입된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넘어와 함께 정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단순한 역사정보 전달보다는 자유로운 동선으로 현대적인 소파와 조명 속에서 휴식하는 공간으로 연출해 다양성의 현대적 맥락을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주민들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이한희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상도 기존과는 차별된다.

경주박물관은 지난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새단장하고 있다. 국은 이양선 박사의 기증 문화재가 전시된 국은기념실이 옮겨간 신라역사관은 양태오 디자이너 손길을 거치니 마치 최고급 호텔 로비처럼 바꾸고 전시실 동선을 환하게 터서 편안한 관람을 유도한다.

최선주 관장은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불교사원실을 확장 개관해 신라불교사원의 연구결과물을 소개했고, 세계문화 속 공존과 다양성을 유물로 찾아보는 특별전을 통해 새롭게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경주 =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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