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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갑질 사장 신상공개합니다"...온라인 '사적제재' 어디까지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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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사연 제보 받아요" 고발 콘텐츠 인기
제보자는 사과 받고 누리꾼 속 시원해
사적제재 지나치면 명예훼손 위험 있어
한국일보

만취한 여성이 핸드폰을 쥔 채 남성을 폭행하고 있는 모습. 보배드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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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20대 여성 A씨가 핸드폰을 쥐고 40대 남성 B씨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친다. 이어 A씨는 욕설을 내뱉으며 B씨 다리를 걷어차기도 한다. 이 사건은 7월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 산책로에서 일어났다. 당시 B씨 가족은 A씨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사과는 받지 못했다. 이에 한 유튜버는 '40대 가장을 폭행한 20대 만취녀의 신상을 공개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유튜버는 A씨의 직업과 직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글을 공개했다.

유튜브,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온라인 사적 제재의 적절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제보자가 갑질, 주취 폭행 등 형사처벌이 어려운 사건을 공론화하면 온라인에서 누리꾼들이 함께 나서 '응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보자는 억울함을 풀거나 자신에게 해를 끼친 당사자로부터 사과를 받기도 한다. 이를 지켜보는 대중은 잘못을 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결과에 통쾌해한다. 하지만 공인이 아닌 일반인의 개인 정보 등을 공개하거나 지나치게 인격을 비난하는 등 선을 넘는 행동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원조 찾은 남산돈가스·무개념 차주 사과하기도

한국일보

5월 13일 오후 서울시 중구 소파로 23번지 '남산돈가스'와 '101번지 남산돈까스' 가게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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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사적 제재가 제보자의 억울함을 풀거나 잘못한 일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5월 유튜버 '빅페이스'는 원조 남산 돈가스 매장을 운영했다는 박모씨의 억울한 사연을 전했다. 그는 당시까지 원조로 알려진 음식점 '101번지 남산돈까스' 주인이 기존에 같은 자리에서 돈가스 집을 운영하던 박씨를 내쫓고 영업을 이어갔다고 폭로했다.

뒤늦게 원조 공방이 이어지자 '101번지 남산돈까스'는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영상이 나간 후 박씨가 운영하는 중구 소파로 23번지 '남산돈가스'는 손님으로 북적였다. 원조 타이틀을 되찾은 박씨 측은 유튜버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관련기사: 원조가 뭐기에...법적 다툼으로 간 '30년 남산돈가스 원조 논쟁')

한국일보

유튜버 빅페이스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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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사적 제재를 통해 막말·만행을 저지른 사람을 상대로 추가 폭로·고발 등이 이뤄지기도 한다. 14일 유튜브 채널 '한문철TV'에 소개된 제보 영상에는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한 람보르기니 차주가 되레 제보자에게 시비를 걸고 아이스커피 용기를 던지는 장면이 담겼다. 해당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리꾼의 공분을 사자 차주는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이후에도 차주가 과거 장애인 주차 구역에 불법 주차한 사진이 연이어 올라오는 등 고발이 이어졌다. (관련기사: 옆 차에 커피 던진 람보르기니 차주...사과 뒤에도 불법 주차 제보들 이어져)

좌표찍기·신상공개…지나친 제재는 '독'

한국일보

유튜브 채널 구제역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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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적 제재는 양날의 검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고발한다는 명분이 있어도 정도가 지나칠 경우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 11월 유튜버 '구제역'이 공개한 폐쇄회로(CC) TV 영상에는 70대 여성 C씨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미용사 D씨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관련기사: '전단지 할머니' 무릎 꿇린 미용실 사장..."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다" 사과)

영상이 올라간 후 누리꾼들은 유튜버가 언급한 해당 미용실의 대략적 위치, 포털 리뷰 등을 참고해 상호 이름과 D씨의 신상 정보를 알아냈다. 이어 누리꾼들은 미용실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사과문에 D씨가 중국 동포임을 언급하며 비하하거나 성적으로 모욕하는 댓글을 달았다.

누리꾼은 사건이 알려져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는 제보 내용 이상의 신상공개가 필요했냐며 문제를 지적했다. 미용실 CCTV 영상으로 해당 유튜버의 존재를 알게 된 강모(25)씨는 "처음에는 갑질한 미용사의 잘못이 어떤 식으로든 알려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유튜버가 나서서 좌표찍기를 할 필요성이 있나 싶었다"고 비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대중이 온라인 사적 제재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대리만족을 할 순 있다"면서도 "제보 내용과 관련 없이 신상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개한다는 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버 '구제역'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최대한 신상이 드러나지 않게끔 얼굴을 모자이크하고 상호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영상이 올라가자 온라인에서 정보가 공개된 것"이라며 "미용사가 비판받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전 국민의 질타를 받으며 욕을 먹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사적 제재 용인 어려워...명예훼손 폭넓게 적용해야"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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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사이에서는 온라인 사적 제재를 용인하는 분위기 자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는 "개인이 분노할 만한 일이라고 해서 온라인 사적 제재를 부추기거나 옹호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법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사적 제재에서 개인이 명분으로 삼는 정의가 과연 모든 사람들의 보편타당한 동의를 받은 건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 사적 제재는 사회적 논란뿐 아니라 법적 논란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여론의 힘을 빌려 '응징'하다 보니 현행법으로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제재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6일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을 둔기로 폭행한 20대 남성이 특수상해 및 주거침입 혐의로 입건된 사례와는 다른 이유다.

일부 전문가는 짧은 시간에 큰 폭으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에 맞는 대책을 제시한다. 이윤우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인터넷은 파급력이 크고 일반인에게 한번 피해가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잘못한 사람이라도 명예를 보호해야 한다"며 "온라인 영역에 한해서 일부 신상정보만 공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확대 해석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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