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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세계 속 한류

[NGO 발언대]산재가 한류의 밑거름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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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산재 아니야?’라는 지인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에서 우승한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우승 상금을 배틀 때 다친 멤버의 치료비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미담처럼 소개되었지만, 실상은 일터에서 발생한 부상 치료를 제작자가 아닌 오디션 참가자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인터뷰였다.

경향신문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평범한 일터로 가정해보자. 어떤 업무가 나름의 ‘스펙’이 된다고 생각해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내면 보너스를 받을 수 있지만 언제든 업무에서 배제될 수 있는 불안정성도 가지고 있다. 노동의 형태가 다소 특수할 뿐, 고용자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고용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촬영 현장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일터이고, 공연, 노래, 춤, 연습 등 모든 행위는 방송 콘텐츠를 구성하기 위한 노동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짧은 일정에 여러 개의 콘텐츠를 동시에 강행한다거나, 즉흥적인 배틀을 주 콘텐츠로 삼은 점은 업무 자체가 높은 수준의 부상 위험을 애초에 내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스우파>에서는 촬영 중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우승 상금을 치료비로 사용했다는 홀리뱅 멤버를 제외하면, 방송 제작을 위해 다친 댄서들은 모든 비용을 홀로 감당했다는 말이 된다.

노동을 제공했지만 노동자는 아니라고, 고용과 지시는 했지만 사용자는 아니라고, 일 때문에 다쳤지만 개인이 부주의한 것이라고. 핑계의 레퍼토리는 이미 많은 산재 현장에서 반복돼 왔다. 하지만 유난히 카메라가 돌아가는 현장에서는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연습생 혹은 일반인처럼 직업 연예인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산재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된다. 불공정계약이 관행이 되고 악마의 편집이나 부적절한 언론보도에 제대로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중문화예술산업은 아동·청소년·청년의 꿈을 볼모 삼아 극한의 환경에서 콘텐츠를 생산한다. 장시간의 촬영 현장에서 연기하는 아역배우들이 즐비하다.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아이돌 데뷔를 목표로 주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합숙을 하는 연습생 시절은 통과의례로 회자된다. 학습권, 노동권, 수면권, 프라이버시, 과도한 경쟁 등 산업시대의 영국 아동인권 문제에서 다룰 법한 이슈가 2021년 한국의 방송 현장에서 재현되고 있다.

대중문화예술가들의 활동은 방송 콘텐츠라는 상품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 상품들은 ‘한류’를 타고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이제라도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의 노동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성공한 소수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권리를 주장하기조차 힘든 종사자의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촬영장 감금, 출연료 미지급, 산재 방치 등 약자의 인권이 더 이상 한류의 밑거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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