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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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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역사] 100년 전 자동차 3대 중 1대가 전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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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년까지 전 세계 모든 신차의 70% 이상이 배터리로만 구동될 것으로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 Bloomberg New Energy Finance)가 전망했다.

이런 전기자동차가 최신 기술을 쏟아 부어진 결과로 마침내 개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19세기부터 개발되어 온 오랜 역사가 있다. 특히 한때는 자동차 전체 중 3분의 1이 전기자동차였던 시대도 있었다. 1900년에 전기 자동차는 미국 도로에서 모든 차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지만 가솔린 엔진 모델이 등장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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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전기차는 1800년대 초부터 전지로 달리는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발명가인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은 가솔린 자동차가 발명되기 반세기 전인 1832년경 최초 재충전할 수 없는 1차 전지를 사용해 전기마차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1890년경에는 미국 아이오와주의 과학자인 윌리엄 모리슨(William Morrison)이 6인승의 전기 왜건을 개발, 미국 최초의 모델을 시연했다.

1899년 4월 29일, 벨기에 경주용 자동차 드라이버인 카밀 제나치(Camille Jenatzy)는 자신이 개발한 ‘라 자메 꽁땅뜨’(La Jamais Contente, 영어: Never Satisfied)라고 불리는 전기자동차를 타고 사상 처음으로 시속 100km를 넘는 속도로 주행했다.

19세기 말까지는 전기 자동차 택시가 증가했고, 1899년 9월 13일에는 뉴욕에서 헨리 브리스(Henry Bliss)라는 사람이 전기자동차 택시에 치어 사망했는데, 기록상 미국 최초 자동차 사고 사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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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0년대
20세기에 들어서자 미국에 있는 전 자동차 중 3분의 1이 전기자동차였다. 도로에는 전기자동차용 충전 스탠드 등도 준비되어 있었다. 실제로 전기자동차는 가솔린차보다 조용하고 청결할 뿐만 아니라 운전도 간단해 여성에게도 잘 팔렸다.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과 포드모터 창시자인 헨리 포드는 1914년 기자회견을 통해 “100마일(약 160km) 달리는 실용적인 자동차를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국 포기됐다. 한편 오스트리아 자동차 공학자인 페르디난드 포르쉐(Ferdinand Porsche)는 세계 최초 가솔린과 배터리 구동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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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1960년대
한때는 큰 인기를 자랑한 전기 자동차였지만, 포드가 가솔린차인 T형 포드 제조에 라인 제조 방식을 도입해 가솔린차가 대중에게 보급하고, 가솔린차 엔진 수동 시동을 대체하기 위해 1912년에 도입된 셀프 스타터를 채택한 결과, 전기자동차 점유율이 감소했다. 1930년대 초반에 이르자 전기차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인 전기 자동차였지만, 1954년에 처음으로 렉트로(Lektro)가 전동 골프 카트가 상용화하는 등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59년에 내셔널유니온전기(National Union Electric)가 르노 도핀스(Renault Dauphines) 100대를 배터리로 작동하도록 수정한 헤니 킬로와트(Henney Kilowatts)라는 모델을 출시한다. 또한 1960년대에는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와 아메리칸 모터스(American Motors)를 비롯한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협력해 환경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자동차의 컨셉 모델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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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1980년대
1971년과 1972년에 보잉과 GM이 설계하고 제작한 NASA의 전기 달 탐사 차량이 달에서 운행하는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보면서 배터리 전력이 홍보 효과를 톡톡히 얻었다.

GM은 1973년 도시형 전기차 시제품을 개발하고 세브링-뱅가드(Sebring-Vanguard)는 시티카를 출시했다. 이처럼 1970년대 초반에는 배터리 용량이 기존보다 훨씬 커졌기 때문에 전기자동차 상용화는 더욱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역시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자동차에는 성능 면이나 운행거리에 문제가 남아 전기자동차 상용화가 어려웠다. 10년 후 휘발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자동차 제조업체와 미국 정부가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 제한된 범위와 성능 문제로 광범위한 수용을 방해하는 배터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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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1990년대 들어서는 배기가스 규제가 강화되자 자동차 제조사가 석유 연료 차량을 대체하는 전기자동차에 점점 초점을 맞추게 된다. 1997년에 제너럴모터스는 EV1이라는 2인용 전기자동차 1,000여 대를 만들어 캘리포니아와 사우스웨스트의 고객에게 시장 조사용으로 임대했다. 또한 도요타 프리우스, 혼다 인사이트 등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등장하고 닛산은 리튬 이온 배터리(나중에 스마트폰과 테슬라 전기차에 사용될 같은 유형)를 탑재한 미니밴 알트라 EV라는 전기자동차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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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2003년 말 제너럴 모터스가 EV1의 시장조사용 임대 사업 계획을 중지하고 수거한 차량은 폐차 처리해 버렸다. 하지만, 같은 해에 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와 마크 타페닝(Marc Tarpenning)이 창업한 테슬라 모터스의 첫 번째 투자 라운드에 페이팔(PayPal) 공동 설립자인 일론 마스크(Elon Musk)는 750만 달러의 초기 투자를 주도하고 2004년에는 이사회 의장이 됐다. 이후 2008년 테슬라는 스포츠카 로드스타(Roadster)를 출시한다. 리튬 이온 배터리 셀을 사용하는 최초 양산형 EV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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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201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전기자동차로 닛산 리프(Leaf)가 등장했다. 테슬라는 모델 S 세단, 모델 X SUV 및 저가형 모델 3을 양산한다. 머스크는 또한 2019년 3월 15일 테슬라 모델 Y와 3세대 슈퍼차저 공개하고 고급 자동차 메르데스 벤츠(Mercedes-Benz) 제조업체인 다임러(Daimler)와 워런 버핏이 후원하는 중국 내 전기차 1위 업체인 비야디(BYD)와 같은 회사의 운송업체와 경쟁할 사이버트럭도 공개했다.

한편 중국은 스모그를 줄이고 석유 수입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 됐다. 샤오펑모더스(XPeng Motors)와 국영 상하이모터스(SAIC Motor)를 포함한 수백 개의 중국 내 제조업체와 스타트업이 점유율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앞으로 전 세계 도로를 뒤덮을 전기자동차의 모든 것이 190년 전인 로버트 앤더슨의 1832년 전기 마차에서부터 시작됐다.

김들풀 기자 it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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